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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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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빨랐다고 한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엄마, 아빠 하다가
어느날 마당에 핀 꽃을 보고 “아이 꽃 폈다!” 라고 해서
여느 부모들이 한번쯤은 다 그렇듯 ^^ 천재가 아닌가 생각하셨다고 한다.

임신 기간내내 나는 번역 수업을 듣고 있었다.
매주 뱃속에서 아기가 커가는동안 매주 주어진 원서를 읽고 번역숙제를 했다.
아 그러고보니 그때 재택근무로 어느 회사의 영업과 제품에 대한 기술번역일도 하고 있었다.
(출근을 안하던 생활이어서 기억이 희미했다. 아 그렇다고 매일 일을 안한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궁금하기는 했었다.
내 아이는 언어에 소질이 있을까? 책을 좋아할까?
커서 외국어에는 흥미가 있을까? 영어는 좋아하게 될까?

아이는 지금 세살.
내일 모레면 26개월에 들어선다.

어린이집도 아직 안 보내고 손윗 형제가 있는게 아니어서 다른 외부환경의 친구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현재 아이 또래에서 만나거나, 노는 친구들에 비하면 딸아이는 확실히 말이 빠르다.
처음 보는 아기엄마들도 첫 마디가 아이가 키가 크네요, 말 엄청 잘하네요, 다.
(아아. 고슴도치 엄마 아니고 ^^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은 ‘팩트’다)

아직 숫자는 “하나, 둘, 셋, 다섯, 일곱, 열!” 로 세지만 ^^
어휘는 제법 많이 아는 편이어서 가끔 깜짝 깜짝 놀라기도 했고
안전벨트, 청진기, 머리카락, 구급차 등의 발음이 어려운, 어려울 것같은 단어들도 정확하게 발음한다.

그러던 아이는 조금씩 주어, 서술어를 구분해서 문장을 만들더니 요즘은 접속사를 사용한다.
그런데, 하지만, 고담에(그다음에) ,~할지도 모르고 등의 단어를 쓰는데
한번쯤 내가 말해준 문장에서 본인이 인상깊게 생각하고 기억해두었다가 사용한다
지난주말엔 밤에 아이를 재우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까 어떤 친구가 갑자기 울었지?” 했더니
그 다음날부터 ‘갑자기’를 넣어서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다.”꼬끼가(토끼가) 갑자기 나타나서 울었어.” 같은.
아직 조사가 완벽하지 않아서 기침하는 나를 보고 “엄마 목이가 아파?” 라고 한다던가
일단 처음 입력된 발음으로 익혀서 ‘비누방울’은 여전히 ‘비바푸풀” 하고 말하는 허당(?)인 면도 물론 있다.

미디어를 최대한 적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 부부의 방침이라 아이는 주중에 한번도 티비나 아이패드를 안 본적도 있을 정도인데
그래도 가끔은 위급상황이거나 (식당에서 놀러온 손님과 밥을 먹거나) 아이가 보고싶다고 강력하게 요청할때는 보여주기도 한다.
그때 주로 아이가 보는 가장 좋아하는 만화 ‘페파피그’에서도 말을 많이 배운다.
페파가 주로 쓰는 표현이 있는데 예를 들면 “엄마 지금 뭐하세요?” – 아이가 하루에 열번은 물어본다. (페파의 어조로…)
“엄마 우리 지금 어디가는거에요?”
“엄마 죄송해요.” “네 엄마”
써놓고 보니 대부분 존댓말이다. 안그래도 우리는 부부도 서로 존댓말을 하고 아이에게도 주로 존댓말을 하는데
페파피그를 보면서 아이는 뭐라고 해야 할까. 존댓말이 자리를 잡았다고 표현해야 할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거 저기 버려주세요.” 하고 심부름 시키면 모범생처럼 “네. 엄마” 하고 들고가는 모습이 엄마아빠 눈에는 또 얼마나 웃긴지.

요즘은 문장의’나열’에 빠져있는데 말을 하다가 ‘고담에~(그다음에)’가 나오면 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오리, 고담에 아기 캥거루, 고담에 페파, 고담에~” 이런 식이다.

그러더니 오늘 저녁엔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 – 내가 며칠 해주다가 아이에게 거꾸로 해달라고 한다-.
“어어 딸기물고기가 (딸기색= 빨간색.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바다에 살았어. 근데 어느날 갑자기 삐죽 물고기를 만났어. 고담에 조개를 만났어~”
오늘의 아이의 새로운 단어는 ‘어느날 (아이 발음은 ‘오느날”) 이었다.
처음 쓰는 단어라 깜짝 놀라기도 했고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정말 풀타임 밀착육아인데도 아이는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배우고, 보고, 기억하고, 습득하고 있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언어 뿐 아니라 행동이나 표정, 안정감이나 불안감의 감정들도 배우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다시금 육아가 내 거울이구나 싶다.

아이 나이만큼 엄마나이 (플러스 뱃속의 시간) 일테니 이제 나도 겨우 26개월 엄마니 성장할 수 있겠지? :)
그래도 엄마는 좀 더 부지런히 나아져야겠다.

참, 아이가 말은 제법해도 아직 구강구조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꼬마라 발음은 아기다워서 그게 참 귀엽다.
특히 ‘리을’ 발음은 이 시가가 조금 더 오래갔으면 하고 바랄정도다.
“엄마. 버스가 부융부융 지나가요.” “이 빵은 마양마양해 .” “저기 뽀요요가 있네?”
너무 빨리 크지 않았으면 :) 하는 엄마의 마음이 오늘도 절반.

제주는 너무 습하고 더워서 날마다 아이와 어디로든 피서를 간다.
아마 내일도 아이는 내가 매일 아이에게 물어봤던 말을 내게 물어볼거다.

“엄마, 우리 어디 시원한데 가까?”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육아와 살림(이라기엔 부끄러운) 이외엔 아무것도 못하는 생활에 뭔가 다시 발동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미 사두었던 혹은 읽다가 내려 놓았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지난주부터.

작년에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 을 읽고 너무 좋아서 중고 서점에서 작가의 소설 책 몇권을 구해놓았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읽다 보니 출간순서대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세번째 소설을 읽다가 영 진도가 안 나가서 그냥 놔두었던걸 다시 도전했다.
내용이 지루한 건 아니었는데 아마 처음 읽을 당시 생활에 지쳐있었던 것 같다.
다시 읽다보니 앞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몇번씩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희미한 기억을 확인해가며 읽었다.

물론 여건이 여건이다보니 남은 부분도 당연히 몇날 며칠에 걸려 읽었지만 다시 책을 읽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니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얼른 이어서 읽고 싶고 멍하게 보던 심야 티브이 프로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더라.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뭐랄까, 안도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동안 트랙에서 멀리 밀려난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부지불식중에 가졌었나보다.
하여간 이래저래 흡족한 상태로 책을 마치고 이 페이스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다른 책으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른 책이 위의 저 책. 엄유정 그림작가의 책이다.

8월까지 서울에서 작가의 그림전시도 한다는데 가볼 상황은 안될것 같고
아쉬운 마음에 책을 붙잡는다.
이 더운 여름에 아이슬란드를 엿보는 건 멋지겠지.

사실 사둔지 몇달 되었는데 미국의 친구에게 한 권 보내고 나도 봐야지 싶어 이제서야 열어보는거다.
점점 사둔 책이 읽은 책보다 많아지려고 하는 상황에 스스로 자괴감도 느끼지만
사실 책장 앞에서 다음엔 어떤 책을 읽을까- 하고 고민하는 게 내겐 엄청나게 신나고 즐거운 일이다.
온갖 모양과 색의 케익 진열장 앞에 서 있는 느낌? :)

하반기엔 다시 속도가 좀 붙었으면 한다.
아 물론 안그래도 엉성한 살림과 집안이 책 읽는답시고 더 엉성해질까 걱정이 되지만
뭐, 아무렴 어때. 난 일단 페이지를 열어 아이슬란드로 떠나볼란다. 하하!!

 

2nd day of 22nd week

인생은 즐겁게. 엄마 맘대로 한 번 입혀보는거지요! 쿠사마 야요이도 울고 갈 땡땡땡땡......

인생은 즐겁게. 엄마 맘대로 한 번 입혀보는거지요! 쿠사마 야요이도 울고 갈 땡땡땡……

5월 31일. 오늘은 올해의 22주 이틀째 되는 날이란다.
간만에 열어본 노트북의 Date Line이 일러준다.
요즘은 앱이 가장 친절한 비서다.

5월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4월과 5월을 기록한다.

4월은 어떻게 갔더라. 열흘을 잡고 나선 친정길이 어찌저찌 길어져 4월과 5월을 걸쳐 20일이 넘게 머물렀다.
제주로 내려온 후 거의 매 달 올라갔지만 이번엔 정말 여유로웠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자주 보고, 쇼핑몰도 신나게 다니고
무슨 산간 오지에 살다가 올라간것도 아닌데 그런게 그렇게 좋더라.

집안 살림 안하고 아이만 돌보니 그건 더 좋았다.
육아 스트레스는 별로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의 주된 스트레스는 살림에서 오는 것이었다!
여전히 서투르고, 그래서 신랑에게 미안한 나의 살림솜씨.
하여간 살림 안하고 지내니 몸과 마음이 어찌나 편했던지 ‘마흔 다섯이 되기 전에 부지런히 둘째를 낳아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 일주일쯤 지나 다시 현실감각을 되찾고 딸 하나 엄마로 곱게 살기로 다짐했지만.

5월에 다시 제주로 오니 시각이 조금 달라졌더랬다.
집에 간만에 오니 마치 콘도 놀러온 기분이 약 1분간 들어 ^^ 잠시 흥겹기도 하고
친정 가기전에 읽었던 마법의 정리책 덕인지, 세간살이가 한동안 안보다 눈에 들어온 탓인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힘이 생겼다.(정리의 신이 드디어 내게 오신것인가!)
그래서 느리지만 조금씩, 마음을, 물건들을 덜어내고 있다.

5월 뉴스에서 접한 살인사건 소식에 며칠간 잠을 못 이뤘다.
세월호때처럼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에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신랑 앞에서 세상이 너무 무섭고 슬프다고 눈물이 터진 후에야 조금씩 정상적인 생활을 찾았다.

세상이, 사람들이 , 이 나라가 어떻게 이런 모양새까지 왔을까.
이 땅에서 딸을 키우는 ‘여자’로서 늘 불안하다. 그리고 슬프다.
예전엔 그냥 나 혼자 이 나라가 싫었었는데, 이제는 싫은게 아니라 살아가는 일이 불안하다.
현실이어서 더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 이 무거운 마음.

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답은 신앙인가. 하루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닌 척 모르는 척 생각하지 않고 사는게 답이려나. 또 다른 날은 그렇게 생각한다.
새삼 삶의 무게감에 휘청이던 5월이었다.

한동안 적지 않았던 작은 기도노트를 다시 꺼낸다.
그냥 한 줄씩 죽 적어내려가는 나의 노트.
아끼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마음속에 한 번씩 떠올리는 일에 한 가지를 더하기로 했다.
감사.
주어진 것에, 누릴 수 있는 것에, 꿈 꿀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적는다.

많은 마음이 맴돌았던 4월과 5월
좋아하고 자주 입었던, 그래서 이젠 많이 낡아버린 추억의 옷
하루 하루 날짜는 지나는데 아닌 척 숨어있던 냉장고 속 좀비들
모두 탈탈 털어, 차곡 차곡 접어, 미련 없이 깨끗이 보낸다.

아, 이제 무더운 여름이 온다.
이럴때 나도 한 번 외쳐보자.
“여름아, 부탁해!”

6월부터는 조금 더 파워 업 해서 살아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