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라는 이름과 인사하기

*짤막한 글 대신 조금 긴 글을 써보는 모임에 가입했다.
이 카테고리에선 그곳에 쓰는 글들을 모아둘 계획.
이곳에 쌓이는 글 보다 부지런히 블로그에 글을 써야할텐데 말입니다…

왼손잡이인 신랑 덕에 벽 쪽에 붙여둔 2인용 식탁에선 자연스레 서로의 자리가 정해졌다. 신랑은 왼쪽 공간이 트인 자리로, 오른손잡이인 나는 오른쪽이 트인 자리로 마주 보고 앉았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음에도 여전히 서툰 요리 솜씨 때문에 밥을 먹을 때가 아니어도 식탁이 있는 주방에 머무는 시간은 언제나 예상보다 길었다. 큰 집도 아니기에 몇 걸음 더 걸어서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으면 되지만 그러다가 종종 물을 끓이거나 프라이팬을 데우던 걸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에 자연스레 식탁 의자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휴대폰을 보거나 책 몇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식탁 의자의 가죽이 조금씩 닳는 건 당연했다. 매일 조금씩 찢어지던 의자의 끄트머리 가죽 부분은 앉을 때마다 점점 더 거슬렸다.

모처럼 시댁에 갔다 들른 이케아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 의자 위에 올려 쓰는 방석 매트를 발견하고는 신랑에게 물었다.

“우리 이거 살까요?”

“어디에 쓰려고요?”

“식탁 의자에 얹어서 쓰면 좋을 것 같은데.”

“글쎄. 굳이 필요할 것 같진 않은데….”

갸우뚱거리며 바라보는 신랑의 대답을 들으며 막상 사서 올려놓고 쓰면 불편할까 싶어서 나도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고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주방에서 무심코 내 쪽 식탁 의자에 앉았던 신랑이 깜짝 놀라 물었다.

“어휴, 여기 의자가 다 찢어졌네요?”

“응. 그래서 그때 방석 사려던 거에요.”

“아….몰랐네….”

나도 그때 신랑 쪽 식탁 의자에 앉아서 깨달았다. 신랑의 의자는 내 것만큼 닳지 않았다는 것을. 둘 다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지만 신랑은 독립된 방에서 주로 일을 하고 식사 때만 식탁에 앉았으니 의자는 신혼 때 처음 사서 쓰기 시작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나는 신랑이 일하는 방에 결혼 전 쓰던 컴퓨터가 놓인 내 책상과 의자도 있었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방에 들어가 앉을 틈이 없었고, 조금 지난 후에는 혼자 노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거나, 때로는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어느샌가 내 책상은 식탁이었고 ‘내 자리’는 주방의 식탁 의자가 되어있었다.

늦은 나이에 결혼 해서 그런 것인지, 아직도 마음만 젊은 것인지 ‘주부’’ 이라는 호칭이 얼결에 걸쳐본 남의 옷처럼 내내 낯설었었다. 아주 더디게 늘어가고 있는 어설픈 살림 솜씨를 생각하면 ‘주부 9단’이란 내공이 과연 언젠가 내게도 생길까 싶기도 하고, 남들도 다 이러지 않을까 하면서도 또 설마 정말 그럴까 싶고. 분명 나의 하루 일상을 떠올려보면 지극히 평범한 주부 생활임에도 내가 주부라는 사실이 정말로 내게 와닿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새것과 다름없는 신랑의 의자 맞은편에 놓인 내 의자를 나란히 보면서 처음으로 ‘나도 주부였구나!’ 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래, 나도 주부였어. 그리고 밀려온 서글픔과 안도감. ‘어느새 이만큼 와버렸네’ 하는 마음과 ‘이곳이어서 다행이다’ 하는 마음에 갑자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렇게 나는 ‘주부’라는 이름과 인사하고, 받아들였다. 내내 주부가 되었다는 걸 마음으로 부정하다가 인정해버리게 만든 게 뭐든 척척 만드는 손에 붙은 요리실력이나 숙련된 살림 솜씨도 아니고 낡아 찢어진 식탁 의자였다니 지금 생각하면 조금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된 후에도 여전히 매일 부엌 식탁에서 책을 보고, 일하고, 글을 쓴다. 낮에는 한참 책과 노트북을 늘어놓았다가 식사 때가 되면 후다닥 챙겨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면서.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주부 생활을 하며 늦은 나이에 부엌 식탁에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에 그려졌던 풍경과 지금의 내 모습이 조금은 닮았을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들 학교 가고 나면 아이들 책상에서 글을 써도 됬을텐데 왜 식탁에 앉아 글을 썼을까 하고 의문스러워하던 나는 이제 그 이유를 너무 잘 알 것 같다.

요즘은 종종 신랑과 조금 큰 식탁을 살까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4인용, 혹은 6인용 식탁을 사면 지금의 2인용 식탁은 진짜 나만의 책상다운 책상으로 쓰겠다고 결심해보지만, 그때가 되면 또 나는 4인용, 혹은 6인용 식탁의 끄트머리에 앉아있지 않을까?

그때는 조금 더 익숙한 이름으로 능숙하게 주방을 차지하는 주부이길. 주부 9단까지는 아니어도 3단 정도만이라도 되었기를 바라본다.



2019년 1월 22일

 

2019_calendar

아이를 재우며 같이 누워있다가 문득 내가 무언가를 할 시간이 (에너지는 차치하고) 맥시멈 3년 정도 남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올해 다섯살이 되었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되기까지 3년이 남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더 빨리 귀가하고, 더 긴 방학인데
지금보다 분명 체력적으로 떨어질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든거다.

물론 그때는 그만큼 자라난 아이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테고
나도 나름 몇년차 엄마로 조금 더 요령이 생기거나 , 마음을 비운 양육자가 되어 있을거라 희망하지만
문득 그 3년이라는 기간을 떠올리고는 마음이 초초해졌다. (넷플릭스에 ‘내가 찜한 콘텐츠’ 만 다 봐도 3년이 모자랄 것 같은데!)

그 기분은 39살의 후반기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데, 그때 난 속으로 이런 상상을 했었다.
< 만약 요정 (여전히 유아적인 나의 마인드…)이 나타나서 마흔살이 된 네 모습으로 평생을 유지하게 해주겠다고 한다면 난 지금부터 뭘 준비할까? >
그러면서 침대에 누운채로 ‘아 그러면 운동을 해서 몸을 좀 만들어놓을거고, 묵은 짐도 싹 버릴거고…’
그러다가 아 그럼 요정이 있건 없건 (당연히 없지만…) 지금 그렇게 하면 되잖아?! 라는 깨달음이 왔으나
깨달음이 실행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드문 게으른 룸펜형 인간인 나는 그냥 깨달음만 얻고 40대를 맞이했었다.

그런 기분이 다시 든건 (45세를 앞두고도 한 번 더 느꼈었지만!) 이젠 정말 체력이나 에너지로 그걸 체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제까지 주말을 포함해서 5일간 39도에서 떨어지지 않는 열감기를 달고 있던 꼬마가 드디어 다시 어린이집 등원을 했고, 나는 딱 꼬마가 아픈날부터 시작되었던 손목의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정형외과를 찾았다.

하루하루의 인생에 당연히 변수가 많지만, 육아야말로 나와 또다른 유기체간의 무한한 변수가 있는 일이다.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저 매일 약간의 공부를 하고, 약간의 기록을 하려는 건데 아이가 아프면 그 틈이 나지 않는다. 물리적인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과 피로도의 문제라서 그냥 손쉽게 놓아버리게 된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불을 켜야하는 부엌 식탁이 아니라 자연광이 들어오는 자리에 테이블이 있으면 뭐든 쓸 수 있을 것 같고, 두툼한 새 요가매트를 사면 매일 운동을 안 빼먹고 하게 될 것 같고, 따져보면 필요는 없지만 예쁘다는 생각이 든 물건을 사버리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식전 운동이 칼로리 소모에 더 도움이 되느냐, 식후 운동이 더 도움이 되느냐는 논란에 어느 트레이너가 그거 따질 시간에 나가서 걸으라고 했는데 그게 내 이성적 자아가 저런 나에게 늘 하는 이야기다.

낡은 습관, 몸에 익은 패턴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좌절이 되기도 하지만, 자꾸만 반복하다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게 또 게으른 희망이라고 해도.

이 마음이 새해의 첫달이라 느끼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긴 이미 22일이나 지난 ‘새해’니까.

네 번째 여름.

 

36개월 생일을 열흘정도 앞두고 아이는 지난주에 처음으로 기관생활을 시작했다.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처럼, 처음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을 때 나의 심정은 “자리가 났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흑흑)” 하는 감격스러움이었다.

오늘로 등원 5일차. 아직도 혹시 중간에 울어서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대기조 엄마지만 아이는 온종일 즐겁게 잘 놀고 지내는 듯 하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우는 순간이 있다고 선생님이 하원길에 전해주시지만, 매일 새로운 동요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제야 너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생활이 되어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등원 후 집에 돌아와서 신랑과 둘이 있는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낯설기도 하다. 둘이서 한 방에서 대각선으로 등을 대고 각자의 일을 할때면 시공간이 희미해지는 느낌도 든다. 연애할때는 비슷한 상황에서도 막 로맨틱했는데. 흠흠.

가끔 예전 결혼해서 아이 키우던 친구들이 뭔가를 하다보면 자기가 애엄마인 걸 까먹는다고 했던 이야기에 저건 농담일까 진담일까 했었는데 이젠 뭔지 알 것도 같다.물론 아직은 중간 중간 시계를 보며 밥 먹을 시간인가, 잘 먹고 있으려나, 낮잠은 자고 있으려나, 떼는 쓰지 않을까 하며 반쯤은 유리창 밖에서 바라보며 기다리는 엄마 맘이지만,  이렇게 적막한 집에서 건조한 일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고, 내 시간이 확보되면 하고 싶은게 정말 많았는데 왜 머릿속이 하얘지는건지. 빨래를 돌리고, 장난감을 정리하는 거 말고 이것저것 하고 싶었는데 또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다. 작년 일기에 보니 아이가 만약 어린이집을 가면 나는 혹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할까봐 맘이 급해지고 뭘 해도 시간낭비하는 느낌을 가지는게 아닐까 걱정하며 써 놓았는데 (아, 난 나를 너무 잘 안다;; ) 그래서 더! 조바심이! 나는 어처구니 없는 이 상황. 하.하.하.

그래서 다시 한 번 적어본다. 시험공부 하기 전에 책상정리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 늙은 엄마지만, 그래도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운동 – 오래오래 아이 곁에 있어주고 싶으니까.
  • 여전히 초보지만 발전하는 번역가가 되기 위해 공부 – 한국말 어렵습니다…영어도 어렵습니다 흑.
  • 덮어놓고 사다보면 언젠가는 읽는다지만, 이제 그만 사고 읽어볼까요 책! (히히히^^)
  • 이젠 가볍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미니멀리스트까지는 아니어도. 물건 열심히 버려봅시다!
  • 좋아하는 무 생채 올해에는 꼭 성공해보고 싶다. 요리 실력 좀 늘려보겠습니다.흠흠.
  • 구몬 일본어.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노력!  (한자로 쓰라고 하면 못 씀)

자본주의 시대에 나름 맞벌이인데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는 경제적 다짐은 없는 걸 보니 역시 나 답다.
불렛 리스트로 적어봤지만 사실 간단하다. 산책과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욕심부리지 않고 사는 것. 그런데 그게 참 어렵네 :)

아이와 함께하는 네 번째 여름. 그리고 아이와 떨어져있는 첫 번째 여름.
올 여름의 나를 기대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