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

한낮의 해가 길어져 어린이집 하원 후에도 거실에 해가 가득한 날은 거실 창가에서 놀던 아이가 눈을 찡그리며 외친다.

“엄마, 해님 좀 가려줘.”

“커튼 쳐 줘” 도 아니고, “ 햇빛 좀 가려줘” 도 아니고 늘 ‘해님’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귀엽다.

어릴 때 어른들의 뉴스는 지루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나운서의 일정한 톤과 어렵고 지루한 말들이 끝나면 뉴스 끝에 일기예보가 나왔다. 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부드러운 오프닝 멜로디와 함께 시작되는 일기예보. 길고 가는 줄이 구불구불 그어진 토끼, 혹은 호랑이 모양의 우리나라 지도가 나오고 일기예보관은 지도를 여기저기 짚어가며 고기압이나 기압골 같은 어려운 말들을 했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지도 위 이곳저곳에 작은 해, 구름, 우산 그림이 떴으니까. 그러면 누구의 설명 없이도 내일 날씨를 모두 알 수 있었다! 위대한 픽토그램 덕에 완벽하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던 어린 나는 어쩌면 그 순간에 모종의 성취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기능과 정보를 가진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처음 유료로 산 앱은 일기예보 앱이었다. 앱을 실행하면 태양이 떠 있고 그 해를 한 번 누르면 기온과 해가 뜨는 시간과 지는 시간을 알려주고 또 한 번 누르면 습도와 풍속을 알려주는 앱. 그다음엔 줄줄이 샀다. 아침이 되면 풀밭에 누워있던 젖소가 일어나 풀을 뜯고 저녁이 되면 별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 누워 자는 소가 등장하는 앱. 스크린에서 손을 대고 움직이면 해가 움직이듯 시간의 흐름과 밤하늘의 색이 달라지고 흐린 날이면 번개도 치던 앱. 그렇게 온갖 개성 넘치는 일기예보 앱만 열 개 가까이 깔아두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열어봤다.

서울 날씨는 기본이었고 사랑하는 도시, 가고픈 도시, 그리운 이가 사는 도시 날씨도 매번 확인했다. 비슷한 사계절을 살고 있는데 우리는 조금씩 다르구나. 도쿄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구나. 런던은 서늘한 밤이겠네. 샌프란시스코는 아직도 여전히 봄날 같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너무 추운 겨울날에 아프리카 대륙의 날씨를 살펴보는 일은 가끔은 다른 사람들도 하지 않았을까?

내일은 오늘보다 따듯해질까 더 추워질까 하는 마음은 어쩌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하루일까 하는 마음과 비슷한 게 아닐까. 지구 반대편의 날씨를 살펴보면서 ‘지금 이곳이 아니면 나는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이 온도, 이 바람 아래의 내가 아니라 다른 온도와 다른 바람을 느끼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서 날마다 이국의 날씨를 확인했던, 어느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아련한 맘이 든다.

여전히 나는 일기예보를 좋아한다. 어쩌다 티브이를 켰는데 막 일기예보가 끝난 순간이면 나도 모르게 “아아!” 하고 탄식을 쏟아내기도 한다. 휴대폰을 들고 앱만 열어봐도 알 수 있지만, 여전히 티브이 뉴스 끝의 일기예보는 내게 놓치고 싶지 않은 즐거움이다. 날씨 앱보다 미세먼지 앱을 더 자주 봐야하는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화요일엔 비가 제법 온다는데 아이는 새로 장만한 장화를 신게 돼서 기뻐할 것 같다. 분명 토끼 우산도 쓰고 가겠다고 하겠지. 새벽부터 비가 온다면 등원하면서 웅덩이에서 첨벙거릴 시간도 계산해서 집을 나서야겠다. 아이가 가고 나면 나는 비를 핑계 대고 좋아하는 카페로 책을 들고 가볼까 싶다.

벌써 다음 주 계획을 하나 세우게 되었으니 정말 고마운 일기예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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