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아닌 다른 곳

주말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도는 언제나 큰맘 먹고 다녀와야 할 것 같은 곳이었는데
신랑의 절친한 낚시광 후배가 제주로 내려가서 자리를 잡은 덕분에
이제 제주는 언제는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곳! 이 되었다.

작년 10월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신세를 지고 왔다.
지난번엔 같이 회도 마구마구 퍼먹고 (거의 퍼먹는 수준)
못하는 술도 한잔 했는데 이번엔 32주를 지나면서 무거워진 배를 안고
회는 조금만, 하지만 여전히 다른 건 잔뜩 먹고 왔다. :)

제주는 섬이니까 당연히 바다가 아름답지만
난 언제나 제주에 가면 구멍 송송 난 저 까만 돌담에 매료된다.
단단하면서, 숨을 쉬고 있는 생명체 같은 느낌이다.

후배는 계속 신랑에게 제주에 내려와 같이 살자고 한다.
원래 둘은 같이 일을 했던 사이고, 둘 다 어디 사는지가 중요한 직업은 아닌 데다가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둘이서 연락을 하며 일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건 아니다.

우리도 작년 결혼 하면서 가볍게 제주에 터를 잡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내려가서 지내면서 신랑은 조금 더 마음이 가는 모양이다.
나? 나는 언제든 지지하고 따라가겠다고 했다.
나 같은 도시형 인간이 ^^ 과연?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지금이야 어디 간들 크게 다르지 않을 것도 같고. 뭐 그런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초년에 역마살이 많다던 어느 역술가가 했던 말처럼
어릴 땐 이사에, 전학에 국민학교 6년 동안 다섯 군데의 학교에 다녔고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는 이곳 저곳 타국에서도 지냈었는데
이제 정말 인생의 중년인건지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도 ‘오래 한 직업’, ‘오래 산 동네’ 가 생겼다.
처음엔 그게 더 낯설기도 했는데 이젠 또 그러려니 한다.

누가 여행지가 좋은 것은 거기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아서라고 하더라.
‘생활’ 을 생각하지 않아도 돼서라는 이야기겠지.
어디든 ‘로컬’ 이 되고 ‘생활’ 이 되면 다른 문제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집이 아닌 곳’ 이 ‘집’ 이 되면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리라는 것도.

뭐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당장 제주에 내려가서 산다는 것도 아니고
현재 내 머릿속엔 지금도 엄청나게 큰 것 같은 이 배가 막달까지 더 커진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헐떡인다는 생각이 제일 크기 때문에, 제주는 여전히 내게 여행지지만
어쩌면 언젠가는 다른 곳이 집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에 바람이 새로 부는 기분이다.

역시 현실보다는 생각과 상상이 더 즐거운 법이려나- :)

2 thoughts on “집이 아닌 다른 곳

  1. 마쿠로스케

    여행지가 좋은 건 생활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다….
    와닿는 걸요.
    어쩌면 여행과 정착은 연애와 결혼 같기도 하군요.
    막상 해 보면 낭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실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
    아버지와 남동생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주… 경기가 썩 좋지 않아요. 물가도 비싼 편이고요.
    님도 아시겠지만 오래 깊이 고민해보고 결정할 일인 듯합니다. ^^

    Reply
    1. colours Post author

      그러게요. 아직 제게 ‘제주’는 여행지라서 이주(?) 조차도 낭만적으로 느껴지는걸거에요.

      여행과 정착이 연애와 결혼 같다는 말에 동감입니다!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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