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재우며 같이 누워있다가 문득 내가 무언가를 할 시간이 (에너지는 차치하고) 맥시멈 3년 정도 남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올해 다섯살이 되었고, 초등학교 1학년이 되기까지 3년이 남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더 빨리 귀가하고, 더 긴 방학인데
지금보다 분명 체력적으로 떨어질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든거다.
물론 그때는 그만큼 자라난 아이와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테고
나도 나름 몇년차 엄마로 조금 더 요령이 생기거나 , 마음을 비운 양육자가 되어 있을거라 희망하지만
문득 그 3년이라는 기간을 떠올리고는 마음이 초초해졌다. (넷플릭스에 ‘내가 찜한 콘텐츠’ 만 다 봐도 3년이 모자랄 것 같은데!)
그 기분은 39살의 후반기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데, 그때 난 속으로 이런 상상을 했었다.
< 만약 요정 (여전히 유아적인 나의 마인드…)이 나타나서 마흔살이 된 네 모습으로 평생을 유지하게 해주겠다고 한다면 난 지금부터 뭘 준비할까? >
그러면서 침대에 누운채로 ‘아 그러면 운동을 해서 몸을 좀 만들어놓을거고, 묵은 짐도 싹 버릴거고…’
그러다가 아 그럼 요정이 있건 없건 (당연히 없지만…) 지금 그렇게 하면 되잖아?! 라는 깨달음이 왔으나
깨달음이 실행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드문 게으른 룸펜형 인간인 나는 그냥 깨달음만 얻고 40대를 맞이했었다.
그런 기분이 다시 든건 (45세를 앞두고도 한 번 더 느꼈었지만!) 이젠 정말 체력이나 에너지로 그걸 체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제까지 주말을 포함해서 5일간 39도에서 떨어지지 않는 열감기를 달고 있던 꼬마가 드디어 다시 어린이집 등원을 했고, 나는 딱 꼬마가 아픈날부터 시작되었던 손목의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정형외과를 찾았다.
하루하루의 인생에 당연히 변수가 많지만, 육아야말로 나와 또다른 유기체간의 무한한 변수가 있는 일이다.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저 매일 약간의 공부를 하고, 약간의 기록을 하려는 건데 아이가 아프면 그 틈이 나지 않는다. 물리적인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과 피로도의 문제라서 그냥 손쉽게 놓아버리게 된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불을 켜야하는 부엌 식탁이 아니라 자연광이 들어오는 자리에 테이블이 있으면 뭐든 쓸 수 있을 것 같고, 두툼한 새 요가매트를 사면 매일 운동을 안 빼먹고 하게 될 것 같고, 따져보면 필요는 없지만 예쁘다는 생각이 든 물건을 사버리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식전 운동이 칼로리 소모에 더 도움이 되느냐, 식후 운동이 더 도움이 되느냐는 논란에 어느 트레이너가 그거 따질 시간에 나가서 걸으라고 했는데 그게 내 이성적 자아가 저런 나에게 늘 하는 이야기다.
낡은 습관, 몸에 익은 패턴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좌절이 되기도 하지만, 자꾸만 반복하다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게 또 게으른 희망이라고 해도.
이 마음이 새해의 첫달이라 느끼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긴 이미 22일이나 지난 ‘새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