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개월 생일을 열흘정도 앞두고 아이는 지난주에 처음으로 기관생활을 시작했다.
김용택 시인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처럼, 처음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을 때 나의 심정은 “자리가 났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흑흑)” 하는 감격스러움이었다.
오늘로 등원 5일차. 아직도 혹시 중간에 울어서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대기조 엄마지만 아이는 온종일 즐겁게 잘 놀고 지내는 듯 하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우는 순간이 있다고 선생님이 하원길에 전해주시지만, 매일 새로운 동요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제야 너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생활이 되어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등원 후 집에 돌아와서 신랑과 둘이 있는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낯설기도 하다. 둘이서 한 방에서 대각선으로 등을 대고 각자의 일을 할때면 시공간이 희미해지는 느낌도 든다. 연애할때는 비슷한 상황에서도 막 로맨틱했는데. 흠흠.
가끔 예전 결혼해서 아이 키우던 친구들이 뭔가를 하다보면 자기가 애엄마인 걸 까먹는다고 했던 이야기에 저건 농담일까 진담일까 했었는데 이젠 뭔지 알 것도 같다.물론 아직은 중간 중간 시계를 보며 밥 먹을 시간인가, 잘 먹고 있으려나, 낮잠은 자고 있으려나, 떼는 쓰지 않을까 하며 반쯤은 유리창 밖에서 바라보며 기다리는 엄마 맘이지만, 이렇게 적막한 집에서 건조한 일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고, 내 시간이 확보되면 하고 싶은게 정말 많았는데 왜 머릿속이 하얘지는건지. 빨래를 돌리고, 장난감을 정리하는 거 말고 이것저것 하고 싶었는데 또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다. 작년 일기에 보니 아이가 만약 어린이집을 가면 나는 혹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할까봐 맘이 급해지고 뭘 해도 시간낭비하는 느낌을 가지는게 아닐까 걱정하며 써 놓았는데 (아, 난 나를 너무 잘 안다;; ) 그래서 더! 조바심이! 나는 어처구니 없는 이 상황. 하.하.하.
그래서 다시 한 번 적어본다. 시험공부 하기 전에 책상정리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 늙은 엄마지만, 그래도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운동 – 오래오래 아이 곁에 있어주고 싶으니까.
- 여전히 초보지만 발전하는 번역가가 되기 위해 공부 – 한국말 어렵습니다…영어도 어렵습니다 흑.
- 덮어놓고 사다보면 언젠가는 읽는다지만, 이제 그만 사고 읽어볼까요 책! (히히히^^)
- 이젠 가볍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미니멀리스트까지는 아니어도. 물건 열심히 버려봅시다!
- 좋아하는 무 생채 올해에는 꼭 성공해보고 싶다. 요리 실력 좀 늘려보겠습니다.흠흠.
- 구몬 일본어.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노력! (한자로 쓰라고 하면 못 씀)
자본주의 시대에 나름 맞벌이인데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는 경제적 다짐은 없는 걸 보니 역시 나 답다.
불렛 리스트로 적어봤지만 사실 간단하다. 산책과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욕심부리지 않고 사는 것. 그런데 그게 참 어렵네
아이와 함께하는 네 번째 여름. 그리고 아이와 떨어져있는 첫 번째 여름.
올 여름의 나를 기대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