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라고 말을 시작하고보니 한국어는 참 오묘하구나 싶다.
아직은, 아직도, 의 느낌이 다르다.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건 ‘짐 줄이기’ 다.
사실 본격적인 건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한 생명분의 짐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걸 경험하면서였다.
‘콩알만한’ 식구가 하나 생겼는데 짐은 ‘어마어마’하게 새로 생겨났다.
옷가지와 기저귀 젖병부터 욕조, 침대, 유모차, 그리고 장난감들.
고맙게도 아기용품의 많은 것들을 여기 저기서 운 좋게 물려받았는데 그래서인지 한꺼번에 잔뜩 생겨버린 짐이 집 구석에 쌓여있곤 했다.
그렇게 이사를 결심하고, 우연찮게 제주로 내려와 신혼집보다 훨씬 큰 집에서 지내며 갓난아기적 짐들은 많이 처분했지만
책과 책장 등의 또 다른 짐들이 또 생겨났다.
사실 아기 짐은 둘러대기 좋은 핑계고 이 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내 짐이다.
오랜 기억속의 물건들은 그동안 베이스캠프격인 친정에 맡겨두었지만 작년 친정집 이사시기에 퇴출명령을 받아서 제주로 모두 끌고 왔다.
(사실 엄마 모르게 두 박스 정도는 숨겨두고 왔다)
그리고 제주로 가져온 그 박스들은 올때 모습 그대로 방 한 구석에 쌓여있다.
볼때마다 가슴이 무거워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뭐가 들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사실 잘 알고 있다. 저 짐들 중 아마도 70프로 이상은 버려도 무방한것이라는 걸.
‘나중에 필요할 때’ 라는 건 짐 못 버리는 사람의 닳고 닳은 지루한 핑계라는 것도.
좋았던 시절의 추억의 물건들도 다시 꺼내볼 일은 앞으로도 거의 없을거라는 것도.
결국 ‘감정’ 때문에 쌓아두고 있는 짐이라는 것도.
나도 종종 이런 내가 싫지만 나는 ‘아직’ 변하지 못했다.
‘아직도’ 미련한 감정이 남아서 과감하게 버리지 못한다.
그러니까 버리지 못하는 건 짐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아는데 여전히 잘 못 한다.
쌓여있는 건 물건이 아니라 감정이구나. 하는 생각을 매 번 한다.
아쉬움, 미련, 안타까움같은.
나만 알아주는 내 그 감정들을 ‘아직은’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좀 보내야지.
‘아직’ 대신 ‘드디어’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