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February 2017

둥글고 둥근.


“엄마 꼬끼 꼬끼~”
낮잠 재우다고 꼬마 침대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토끼 (꼬끼) 노래를 불러달라며 누운 내 위에 엎어진 아이 칭얼거림에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불러준다.
“숲속 작은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섰는데…”
잠이 소로록 다시 들었나보다. 아이가 다기 ‘꼬끼~꼬끼~” 하는 소리에 토끼 부분이 언제 나오더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다, 잠이 들었다.

조용해서 오히려 잠이 깼을까.
꼬마는 어느새 곁에서 곤히 잠들고 내 침대로 올라가서 자야지 하며 일어선 나는 오히려 잠이 깨버렸다.

뱃속에 있던 시간도 합쳐야 맞지만, 세상에 나와 눈 마주친 시간만 세어도 벌써 스무달이 되었다.
예전 미혼시절에 전철이나 카페에서 만난 귀여운 아기들의 나이를 물어보면 아기 엄마들이 “*개월이에요.” 하고 개월수로 이야기 하는게
어색하고 그래서 몇살인걸까 싶었는데 아직 두 돌 24개월도 안되었는데 한국나이로 ‘세살’이 된 꼬마를 보니 이젠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겠다.
갖 태어난 신생아를 보며 서너살은 되어야 내가 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세살이라니. 아직도 아가인데.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뭉텅 시간이 사라져버린것 같고 마음이 이상하더라.
이러다 네 살도 금방이겠구나 싶고. 그냥 순간 혼자서 더럭 아쉬워졌다.

꼬마는 요즘 부쩍 말이 늘었다. 아직 단어와 단어 사이의 말들은 외계어지만 ^^ 열심히 뭐라고 뭐라고 혼자서 말을 한다.
한 번 알려준 단어도 기억하고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하면서도 그냥 말해줬던 어려운 단어도 할 줄 안다.
이 시기 아이들은 매일 매일이 다르다더니 정말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기분.
나도 이렇게 폭발적으로 우주가 팽창해가던 시절이 있었겠지 싶은 생각이 들면 뭔가 스스로에게 미안한 감정도 든다.
이유는 너무 복합적이니 그냥 그렇게 넘어가고. 풋.

오늘은 정월대보름이라고 하는데 제주는 며칠째 눈보라에 구름 가득이다.
달을 좋아해서 꼬마 태명도 ‘달’이었다.
조리원에서 잘 먹고 많이 자라서 퇴소하면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달이 ‘수퍼문’ 되어서 나가요 ^^” 하고 인사도 했었더랬다.

그 꼬마는 이제 ‘달’도 말한다.
하늘을 보며, 그림책을 보며 “다-ㄹ” 하고 소리내어 말한다.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신앙생활도, 종교인으로의 생활도 멀어진지 오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기도를 더 자주한다.
불끈 방에서 아이를 재우면서,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기 시작하면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누군가 아이를 낳고 나니 심장 하나를 바깥에 내놓은 것 같다고 했다.
비유지만 뱃속에서, 내 몸에서 뛰고 있던 두 개의 심장 중 하나가 나온 것이니 문자 그대로 해도 그른 말은 아닐것이다.

밤마다 잠든 작은 얼굴 위에서 안녕과 평온을 빌고 무한의 존재에게 축복을 비는 것.
먹이는 것도, 입히는 것도 어설픈 ‘서툰 엄마’ 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최선이다.

6년전 봄의 어느날 달을 보면서 간절히 바란 소원이 있었다.
내 욕심만으로 이룰 수 있는게 아니어서 더 간절히 빌었다.

소원은 이루어졌고 그 날의 그 달은 항상 곁에 있다.
오늘밤의 소원은 또 마음속에 담아 그렇게 곁에 두겠지.

둥글고 둥근 달.
당신과 나의, 모두의 간절한 소원이 가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