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October 2016

빵칼, 버터 케이스, 치즈 그레이터.

어제 시내에 좋아하는 빵집에 들렀다가 스타벅스에 갔다.
- 빵집과 가장 가깝고 차를 대기 가장 편했던 장소란 이유로!

세상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아아- 싶었다.
크리스마스 캐롤에 빨간 리본이 장식된 트리가 놓인 그곳은 이미 크리스마스였다.
아직 11월도 채 안되었는데도.

갑자기 ‘연말’의 기분이 훅 밀려와서 얼떨떨한 마음으로 카운터에 가보니
올해의 새로운 다이어리들이 나와있었다.
스타벅스 다이어리. 열심히 커피를 마셔 쿠폰을 모아 하나씩 쟁취하는 그 다이어리.
작년에 나도 우연찮게 스타벅스 카드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도전했더랬지.
그래서 받았던 다이어리가 어디있었더라.

집에 와서 책장 선반에 놓인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올 초 몇가지 적어둔 메모가 보인다.
“올해 장만하고 싶은 것. 빵칼, 버터 케이스, 치즈 그레이터.”
사실 이 세가지는 그냥 단순한 부엌용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온전히 나를 위한 물건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나만의 이 물건들이 늘 갖고 싶었다.
여태껏 갖지 못했던 것도 오히려 같은 이유다. 나만의 물건이기때문에 언제든 나중으로 미뤄지기도 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저 세가지 중 올해 빵칼 하나만 장만했다.
발뮤다 토스터기를 사면서 통으로 된 식빵을 위해 당장 필요했기에 후다닥 장만했다.
사실 난 저 세가지를 내 사랑 남대문 수입상가를 휘적거리며 이것 저것 구경하며 사고 싶었지만
난 제주에 살고있고,(흑) 아기를 데리고 남대문 갈 여건이 안되며, (흑흑), 그러다가 언제 사게될지 기약할 수 없어서 (흑흑흑)
그냥 아무거나 사버렸다.

등 떠밀리듯 마트에 가서 산 빵칼은 의외로 아주 적절해서 무척 애용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절실한 버터 케이스와 큰 필요는 없는 치즈 그레이터는 과연 올해 안에 장만할 수 있을런지.

예전에도 이런 물건이 몇가지 있었다. 소위 나의 ‘궁극의 물건’들.
맘에 쏙 드는 페이퍼 나이프가 갖고 싶었고, – 현재 나름 나쁘지 않은 녀석 하나 보유.
촌스럽지 않은 독서대가 갖고 싶었고, – 작년에 알라딘 사은품으로 우연하게 맘에 드는 물건과 조우!
20대초반 애용하다가 부서져버린 것 못지않은 알람시계가 갖고 싶었다. 이건 이제 핸드폰으로 대충 쓰고 사는 삶이 되었다.

그런저런 물건들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다이어리 생각을 했다.
올해가 그랬듯, 내년에도 일일 다이어리를 쓸 여유는 없는게 현실이다.
마음으론 A4사이즈의 커다란 일일 다이어리를 책상 한 구석에 놓고 밤마다 조금씩 기록하고 싶지만 그건 정말 욕심.
게다가 난 언제나 ‘포터블’한지 아닌지가 주요 요소이기에 무겁거나 큰 다이어리는 아마 결국 안쓰게되겠지.

오늘 K와 잠깐 메신저로 나눈 이야기처럼 약간의 Monthly에 무지노트를 결합한 정도가 내게 가장 실용적일거다.
손바닥만한, 가방에 늘 넣어가지고 다닐 수 있는거라면 좋겠지.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10여분만 있으면 10월도 끝. 달력도 두 장 남는다.
여기저기서 슬슬 다이어리, 가계부, 캘린더 상품이 등장하겠지 싶으니 캐롤이 울려퍼지는 교보문고 같은데에서 갖가지 다이어리를 구경하며
신년은 또 어떤 해가 되려나 궁금해하며 지인과 수다떨며 걸어다니는 분위기가 그리워진다.

일부러 New Year’s Resolutions를 안쓴지 몇 년이 되었다.
내년에는 그래도 한 번 써볼까 싶다.

그리고 해가 가기 전에 버터 케이스는 사야지.
그리고 치즈 그레이터는 내년에 꼭 남대문에 가서 사겠어! :)

새로운 계절

아기가 감기에 걸렸다.
4일째 조그만 코에서 콧물이 줄줄 흐른다.
게다가 연신 재채기를 하는 신랑을 걱정하다가 내가 덜컥, 그것도 제대로 감기가 들었다.
세 식구가 골골골 하는 시월이다.

어제부터 바람이 달라졌다.
날씨 만큼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바람이 딱 그렇다.
여러해 전 기억들이 물 밀듯이 밀려와서 아득할 지경이다.
일상에서 뭔가 새로운 생각이 들면 무조건 계절탓, 날씨탓이라 말한다며 지인과 웃었는데
사실 정말 그렇다. 날씨가 달라지고, 계절이 달라지면 뭔가 확실히 달라진다.
기억들을 회상하다보니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건가! 싶기도 하고
아아 중년인건가- 싶기도 하다.

작년엔 아기에게 태교차 떠 놓았던 조끼와 후다닥 남은 실로 떴던 요정모자를 입혔는데
그리고 기운이 남아서! 판초를 뜨다 말았다.
내게는 찬바람이 부는 10월이 되었다는 건 다시금 털실을 끌어안을 시기라는 뜻이다.
일단 판초를 얼른 떠서 올해는 꼭 입혀야하는데 아직 앞판의 1/2 정도밖에 진도가 안 나가서 허허허.
가끔 그럴때마다 뜨게질이란 나에게 뭔가 싶다. 겨울을 위해 쟁여놓은 식량같은 느낌 :)
하여간 더 늘어지면 정말 귀찮아지겠구나 싶어서 요즘 조금씩 하고 있다.

10월이 시작되던 날 티브이에서 앵커가 “이제 올해 달력도 세 장 남았습니다.” 라고 했는데
그말에 아 어느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기’를 사랑하는(이라고 쓰고 ‘분기별 계획 짜기를 좋아하는’이라고 읽는다 *_*) 나에게 올해의 마지막 분기인데도
그저 뜨게질이나 끝내볼까 하는 소박한 바람뿐이다.
운동이나 책 읽기도 뭔가 흐지부지. 에너지가 간당간당 하다.

고백하자면, 요즘은 종종 혼자 독립해서 살던 싱글라이프 생각을 한다.
그때는 그때 나름의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내 공간, 내 시간이 조금 그립다.
이것도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내게 다시 생겨날까?
그랬으면 좋겠다. 마루 한 구석 작은 테이블과 하루 두어시간이라도 :)

돌아갈 곳.

3주만에 집에 돌아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바닥에 얌전히, 켜켜이 쌓였을 먼지덕에 마룻바닥은 비현실적으로 푹신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겠지. 푹신할리가.

공항에서 집에오는 택시안에서 곤히 잠들었던 아이는 집에 들어서면서 눈을 뜨더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장난감들을 보더니 감탄사(라고 생각되는 소리)를 내뱉으며 흥분해서는
구석 구석의 장난감을 꺼내 논다.
‘기억’이라는 것. 15개월 아기에게도 이미 ‘기억’의 역사가 생기고 있구나 싶었다.
하긴 나도 3주만의 내살림이 새로운데 왜 아니겠어.

냉장고에 좀비들이 쌓여있고 친정에서 박스로 부친 물려받은 아기책들도 정리해야하는데
그냥 여러가지 감정상태로 손 놓고있다.
아기와 즐겨보는 에니메이션 ‘꼬마의사 닥맥스터핀스’ 식으로 이 상태를 정의하자면
‘아무것도 하기싫어 증후군’ 내지는 ‘머릿속이 멍해 증후군’ 정도 될것이다.

친정생활도 그저 맘 편하기만 했던건 아니었기에 돌아와서 편안한것도 있고, 또 몸이 힘든것도 있고
무엇보다 제주로 돌아오면서 여전히 떨칠 수 없는 고립감이 늘 이런 복잡한 마음상태를 만들어낸다.
이럴때 해야만 하는 집안일이 있다는 건 고맙기도 한데 ^^ 엄청나게 귀찮기도 하다.

돌아오니 가을이다. 이번 주 내내 비가 왔다는 제주는 앞으로도 며칠은 계속 비가 내릴것 같다.
그래도 빨래를 돌리고, 제습기를 돌리고, 여름옷을 정리한다.
올 여름에 입힐 아기옷을 사면서 설레었던게 얼마전 같은데 이제 한 철 입고 작아진 옷들도 생겨서
정말 내가 몽롱한 시절을 보내도 아기는 쑥쑥 자라는구나 하는 생각에 문득 긴장감이 든다.

티브이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올해도 이제 달력 세 장만 남았다는 이야기에 허허허 너털웃음이 나왔다.
정말 나이를 먹으면서 시간이 이렇게 빨리가는건가?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