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ugust 2016

8월이 지나가기 전에.

소소한 요즘의 생각들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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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욕실에서 쓰는 스크래퍼를 경험한 뒤 완전 중독이 됬다;;
샤워하고 나면 벽이나 욕조의 물기를 싸악- 닦아내는데 너무 좋은거다 이게.
스크래퍼로 물기를 털어내면서 매 번 느끼는 건 삶에도 이런거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거.
지지부진한 미련 같은거 걷어내고, 소모적인 인간관계 걷어내고, 버리지 못하는 감정의 잔여물들 다 걷어내는 내 삶의 스크래퍼.
근데 중요한 건 스크래퍼가 아니라 그걸 쓰는 ‘내’가 있어야겠지.
그래도, 일단, 그런 기제가 있으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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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라는 거. 그러니까 ‘운전’ 말고 ‘~하도록 만들다’ 의 그 drive.
요즘 그게 내 안에서 희미해지고 있다는 걸 느껴서 가끔 슬프다.
육아를 핑계삼아 게으름에 잠식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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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도,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카카오스토리도 (요즘은 통 안했지만), 인스타그램도 한다.
여러 채널을 각각에 맞게 쓰는 편이어서 크게 스트레스도, 부담감도 없다.
그렇지만 가끔 채널이 하나가 되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블로그에 점점 자기반성적인 글들만 쓰는 것 같아서 드는 생각일수도 있고.
채널이 하나가 된다면 아마 이곳이 남겠지 :) Good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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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지는 못해도 해마다 챙겨보는 EIDF. EBS의 국제다큐전.
올해에도 좋은 작품이 많았는데 각국의 아이들이 학교가는 길을 다룬 ‘학교가는 길’ 이 참 좋았다.
스키를 타고, 사막을 가로질러, 숲을 지나서,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학교에 가는 아이들.
이번주는 (지난주에 끝나서) 다시보기로 몇개를 보고 있는데
어제 코트니브와루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아침에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밥을 짓고 이모가 학교에 내다 파는 음식들을 머리에 이고 가서 학교에 가는, 정작 수업은 받지 못하고 다시 코코넛 농장에 일을하러 가는 여자아이가 이야기가 나와서 너무 가슴 아팠다.
네 편에 등장한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 중 학교에 일을 하러 들르는 아이는 그 아이 뿐이었다.
보다가 먹먹해서 끝나고도 한참 아무말도 못했다.
EBS사이트에서 이번주까지 다시보기 가능. 그 이후 자유이용권 구입으로 볼 수 있으니 추천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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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인 북클럽과 티파티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다음에 길게 이야기하고 싶다.

불어오는, 지나가는.

집에서 바라본 노을. 아래는 바다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도 후끈한 열기만 이어지더니 요며칠 사나흘에 한 번씩은 바람이 분다.
아직 서늘한 바람은 아니지만 무언가 불어온다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끝이 안 날것 같은 여름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까지 하는 요즘이다.

작년 여름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때도 이 정도로 덥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남쪽 섬에 와서 그런건지, 지구가 전체적으로 달궈지고 있어서 그런건지 정말 힘겹다.

사실 여름은 가장 싫어하던 계절이었다. – 장마기간만 좋았다-
그런데 여름같은 남자를 만나고, 여름아기를 만나면서
내가 여름의 이름을 불러준것도 아닌데 ^^ 여름이 내게 특별한 계절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 한 번 시원하게 내리지 않는 마른장마와 아열대성 기후로 변해버린 여름은 여전히 힘들다.

마냥 계속 이어질거라고, 변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변했다.
딸은 절대 원하지도, 낳아도 기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임신전의 내가 있었고
마감이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고 생각했었고
제주도에서 사는 삶은 상상도 안 해봤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매 순간 아이가 딸이어서 정말 기쁘고 좋고, 마감도 나쁘지는 않구나 싶고,
주민등록증에 제주시 주소를 달고 살고 있다.

지금까지의 삶도 그렇지만 아이가 생기고나니 앞으로는 또 얼마나 큰 변화들이 있을지
기대도 되고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
아이를 보면서 지금이야 부모가 품에서 지켜주고 보호해주지만 조금만 더 커도 친구때문에 맘 상하는 일, 여자아이로 겪을 부당함등을 경험할텐데  그저 아이가 잘 이겨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8월이 다 간다는 소식에 다시 한 번 정신이 번쩍 들면서 블로그 한편을 채운다.
가을엔 조금 더 부지런해질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 참, 아래 읽었던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 는 그림도 느낌도 너무 좋아서 같은 작가의 ‘나의 드로잉 모로코’ 도 구입했다. 아직 시작은 못했지만 ;_; 아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