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July 2016

한 걸음. 그리고 두 걸음.

 

육아와 살림(이라기엔 부끄러운) 이외엔 아무것도 못하는 생활에 뭔가 다시 발동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미 사두었던 혹은 읽다가 내려 놓았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지난주부터.

작년에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 을 읽고 너무 좋아서 중고 서점에서 작가의 소설 책 몇권을 구해놓았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읽다 보니 출간순서대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세번째 소설을 읽다가 영 진도가 안 나가서 그냥 놔두었던걸 다시 도전했다.
내용이 지루한 건 아니었는데 아마 처음 읽을 당시 생활에 지쳐있었던 것 같다.
다시 읽다보니 앞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몇번씩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희미한 기억을 확인해가며 읽었다.

물론 여건이 여건이다보니 남은 부분도 당연히 몇날 며칠에 걸려 읽었지만 다시 책을 읽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니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얼른 이어서 읽고 싶고 멍하게 보던 심야 티브이 프로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더라.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뭐랄까, 안도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동안 트랙에서 멀리 밀려난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부지불식중에 가졌었나보다.
하여간 이래저래 흡족한 상태로 책을 마치고 이 페이스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다른 책으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른 책이 위의 저 책. 엄유정 그림작가의 책이다.

8월까지 서울에서 작가의 그림전시도 한다는데 가볼 상황은 안될것 같고
아쉬운 마음에 책을 붙잡는다.
이 더운 여름에 아이슬란드를 엿보는 건 멋지겠지.

사실 사둔지 몇달 되었는데 미국의 친구에게 한 권 보내고 나도 봐야지 싶어 이제서야 열어보는거다.
점점 사둔 책이 읽은 책보다 많아지려고 하는 상황에 스스로 자괴감도 느끼지만
사실 책장 앞에서 다음엔 어떤 책을 읽을까- 하고 고민하는 게 내겐 엄청나게 신나고 즐거운 일이다.
온갖 모양과 색의 케익 진열장 앞에 서 있는 느낌? :)

하반기엔 다시 속도가 좀 붙었으면 한다.
아 물론 안그래도 엉성한 살림과 집안이 책 읽는답시고 더 엉성해질까 걱정이 되지만
뭐, 아무렴 어때. 난 일단 페이지를 열어 아이슬란드로 떠나볼란다. 하하!!

 

나의 위로가 되어 줘.

 

아끼던, 아니 가장 좋아하던 컵에 금이 간걸 발견했다.
조그만 조각이 떨어져나간 것 까지.

내 사진첩에도 가끔 등장했던 컵이라 지인들은 영국에서 사 온 컵이냐고 종종 물어보곤했지만
사실 영국에서 돌아오고 5년이나 지난 후에 홈플러스에서 (하하하!) 우연히 산 나름의 반전을 가진 컵이다.

이 컵에 금이 간 걸 발견한 건 마침 브렉시트 결과가 들려온 직후였는데 기분이 묘했다.
뭐 혼자 또 감성적으로 막 의미부여 했다 비난해도 ^^;; 할말은 없지만.

영국에 다시 돌아가는게 간절한 목표이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더 이상 싱글도 아니고 떠날 명분도 없는 지금 그 바람은 가끔 떠올리는 기분 좋은 판타지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멀리서 듣는 그곳 소식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생각해보면 돌아온지도 이미 10년이 넘어서 지금 내가 기억하는 런던은, 영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 게 맞지. 내가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해도 그때의 기억은 ‘그때’ 일테니.

나이를 먹는다는 게 그런건가. 요즘은 지나간 어느 시간들이 미친듯이 그립다. 딱 하루만 돌아가서 지내고 싶어진다.
알라딘의 지니라도 나타나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대학시절의 어느 봄날로 돌아가고 싶다.
친구와 공강시간 나른하게 학교 앞을 서성이고 교내 나무벤치에 앉아서 노닥이던 때로.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떠오르는 몇몇 시간이 있다.
영국에서의 시간도 그 중 하나다.
탬즈강변을 혼자 걷던 순간이나, 하교 후 기숙사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순간이나,
기숙사 뒷편 Alexandra palace 에서 런던 시내를 내려다보던 순간 같은.

그리워 할 수 밖에 없어서 ‘그리움’ 이겠지.
제일 처음 사랑했던 도시였던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땐 노래제목처럼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였는데
이제는 너무 많은 곳,아니 너무 많은 순간에 마음을 두고 온 것 같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드모트의 호크룩스 같은 건 아니지만 ^^
내가 두고 온 마음들. 그곳에 잘 있어줘.
찾으러 갈 수는 없지만, 그곳에 있다는 건 내가 잘 기억하고 있으니
그곳에, 그 순간에 남아서 나의 위로가 되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