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March 2016

이래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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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 이름을 남겨보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하던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어보겠다는 꿈을 가진 것도 아니고
엄청한 아이디어로 일확천금을 벌어보겠다는 소망을 가진것도 아니지만
요즘 같은 날엔 그냥 매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다.

열심히 클렌징오일로 선크림을 지우고 생각해보니 오늘은 선크림을 안 바르고 나갔다 왔다.
요일이 긴가민가 한 건 애교고 어제 있었던 일이 몇 주 전 일만 같다.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거나 심신이 너무 고되다 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아기를 안는 게 무리가 되어서 오른손을 반깁스했고 부엌살림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뭐랄까. 육아란 ‘잉여의 에너지가 없는 상태’가 아닐까?
적어도 지금의 내겐 그런 정의가 어울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모든 에너지 대부분을 쏟고 있는 육아는 과연 잘 하는 걸 까?
아- 아마도 이건 모든 엄마가 자문하고 있는 질문이겠지?
하여간 자가생성 에너지 부족의 상황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열심히 생각해본다.
하지만 첫 육아인데 답이 나올 리가…

아기는 어느새 능숙한 기어가기 기술로 기동력을 갖추고
붙잡고 서는 것도, 몸을 날려 범퍼 침대의 범퍼울타리를 어찌어찌 넘어오는 것도 마스터하더니
오늘은 손을 놓고 한동안 서서 중심을 잡는다! 게다가 즐기고 있어!!

깜짝 놀랐고 너무나 기특하고 이렇게 빨리 자라나 싶어서 놀랐다.

채 입히지 못했던 지난해의 여름옷을 입혀보고 아직 멀었겠지 싶었던 새 옷을 입혀본다.
너무 작아지고, 제법 맞는다.

육아는
제법 적응하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엄마 된 지 283일. 육아서 두 권을 주문하고 잠이 든다.

* 아 물론,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에!
나를 위한 그림책도 주문했다. 사은품도 내꺼야. 음하하하하.

불면의 밤

간만에 또 불면의 밤이다. 자정을 넘겨서 자는 날은 새벽에 깨서 잠 못들 확률이 절반쯤은 되는 것 같다. 

세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 신랑의 불규칙한 – 쉬다 말다 하는 수면 무호흡증- 숨소리가 걱정스러워 더 예민해지고 자다가 가끔 애앵 울어대는 아기 침대로 가서 토닥이고 그러다보면 이 생각 저 생각에 배도 고픈 것 같고 일어나기엔 기분 좋은 이불속에서 뒹굴뒹굴 하다보면 창밖이 환해진다. 

하루에 30분씩 혼자 걷는 시간이 필요해. 
만년필에 잉크를 채워야하는데.
부엌 아일랜드 위 잡동사니 정리 좀 해야지. 
원두 갈아 커피 마시고 싶다 등의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신랑은 규칙적으로 코를 골고 있고 사방으로 굴러 다니던 아기도 얌전히 누워 새근거리고 있고 두 사람 사이 침대 모서리에 모로 누워있는 나는 다시금 잠을 청할까 이대로 일어날까 고민한다. 

지금이 그런 순간. 

머릿속이 꽉 차 있는데 말로도 글로도 담아내지 못하는 요즘이다. 

고프다. 대화도 배도 잠도. 

쏘리 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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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이 되면 얼어있는 땅 속 깊은 곳이 녹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눈이 오고 바람이 차도 봄은 시작되고 있는거라고.
달력의 날짜로도 벌써 3월이니 이젠 공식적인 봄이다.
내내 집에만 있어서 몰랐는데 제주도도 유채꽃이 만발이라고 하더라. – 제주도민이 더 모르고. 흑흑.

사실 구정이 지나서야 올해의 ‘구체적인’ 계획을 정리했다.
수년간의 야심찬 계획과 실패를 거쳐 나름 현실적으로 매일 한 가지씩만 열심히 하자는 다짐하에 요일별로 계획을 세웠지만
이것도 실패가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 다시 요일 감각이 없어지고 있으니…

1월부터 매주 월요일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는다.
앞으로 세 번 남았는데 이런 종류의 배움이 그렇다시피 연습이 관건인데 그게 영 안된다.
아기가 낮잠 잘 때마다 연습 및 숙제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낮잠이 줄어드는 아기덕(?)에 그것도 힘들고
잠들고 난 뒤에는 내가 노곤해져서 유야무야 넘어가기 일쑤다.
뭐…자고로 숙제란 벼락치기 아니던가! 하며 앞으로 남은 세번의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제주에서 뭔가 활력이 되는 시간을 찾으려고 듣기 시작한 수업인데 취미는 자기를 탐험하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엄청난 매력으로 끌리지는 않는, 좋은 경험의 시간이 되고 있다 ^^;;;

읽기 시작한지 꽤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언제부터 읽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제주 오기 전에도 읽고 있었으니 반년은 훌쩍 넘었다.
너무 궁금한 내용이고 이야기도 흥미진진한 공감각을 느끼는 주인공 미아의 이야기인데 (YA책이다. 글자수도 많지 않은 ㅜㅡㅜ)
매번 몇 페이지 읽다 접어두고 해서 늘 집안에서 오가며 책을 볼 때마다 속으로 외친다. 쏘리 미아!
이달 안에는 꼭 읽어야지 하고 다시금 다짐한다.

사실 요 며칠 마음이 내내 심란했다.
가까운 지인이 미국으로 이민 아닌 이민을 가게 되고
형님댁은 1년간 온 가족이 중국으로 가서 지내게 되었고
요즘의 이 나라를 보면서,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이민을 가야 하는걸까 생각도 하고
뭐 이런 저런 이유였던 것 같다.
결론은 어찌어찌 우리는 제주도에서 생각보다 더 오래 살기로 했고
그 결정에 대한 생활속의 내 마음이 어찌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모르겠는게 더 많아서 가끔은 (고치려고 노력하는)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생각은 그만 접고 일요일 밤이니 숙제 해야겠다. 아 이 모습도 평생 안 바뀌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