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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266
집에서 쫓겨난 당신은 거리에서 사는 것보다 이케아 가구점에서 사는 게 낫겠다고 결심한다.
밤에 청소부들이 떠날 때까지 당신은 화장실에 숨어 있어야 한다. 이런 생활을 써보라.

 

내 이름은 샴. 온몸은 멋진 크림색이고 코와 꼬리와 발은 까만 환상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다.
집주인 부부는 내가 어릴 때 식구가 되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날 자랑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해가 가장 잘 드는 창가 쪽 소파 팔걸이는 내 지정석이었고 가끔 두 부부가 서로 자기 무릎 위에 나를 앉혀놓으려고 투닥거리면 난 도도하게 꼬리를 세우고 내 기분에 맞춰 둘 중 한 사람에게 살짝 안기곤 했다. 그러면 선택받지 못한 쪽에선 나에게 더 잘 보이려고 팔을 뻗어 마구 쓰다듬기도 하고 간식을 주기도 했다.
그런 일은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누구보다 빼어난 우아한 샴 고양이인데.
그리고 물론 언제까지고 그렇게 지낼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인 여자가 조금씩 뚱뚱해지면서 배에 커다란 풍선을 넣고 매일 바람을 넣는 것 같더니 며칠 집에 안 들어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조그만 생명체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조그맣고 빨간 생명체는 커다란 이불에 돌돌 쌓여있었는데 수시로 엄청나게 시끄럽게 빽빽 댔다.
그런데도 두 부부는 거슬려 하기는 커녕 그 조그만 게 빽빽거리면 얼른 안아 올려 품에 안고는 서성서성 대고 심지어 그 조그만 생명체가 조용히 잠을 잘 때면 둘 다 눈을 못 떼고 몇 시간이고 쳐다보는 거였다.

게다가 내가 좀 가까이 다가가 통성명이라도 할라치면 나를 번쩍 들어 올려서는 저만치 내려놓는 거다.
뭐지 이건? 아니 나도 저 조그만 게 뭔지, 맛있는 건지, 가지고 놀기 재미난 건지 좀 보자고!
짜증이 나서 내가 뭐라고 소리 좀 지르면 “쉿! 조용히 해야지~” 하면서 나를 아예 다른 방에 데려다 놓는다. 내 털은 벌써 며칠째 빗질도 안 해줘서 내 고고한 자태가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짜증이 꼬리 끝까지 솟구치는 나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결심했다. 아무도 안 볼 때 내가 저 조그만 녀석에게 신고식을 치르게 해주겠다고. 그러면 저 조그만 생명체도 그만 빽빽 거리고 날 존경의 눈으로 쳐다보겠지. 당연히 그래야지.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저녁  시간에 조그만 생명체는 큰 방 침대위에서 누워서 자고 있었고 부부는 거실의 소파 위에서 모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열린 방문으로 들어가서 침대 위로 사뿐히 올라갔다. 어디 한 번 누가 더 멋진가 제대로 보자 이 꼬맹아. 조그만 생명체는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뭐 털도 별로 없고, 얼굴은 하얗고 동그라기만 하고 어디 하나 우아한 구석이 없었다. 대체 이런 게 뭐가 그리 좋은 거지?

그런데 두 부부가 꼬맹이 몸을 털실 꾸러미처럼 꽁꽁 싸두어서 좀 안 돼 보였다. 앞다리 뒷다리도 꽉 매어놓은 듯했다. 그런데 이 생명체는 꼬리가 없는 건가? 나처럼 멋지고 길게 말리는 꼬리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정말 꼬리가 없을까?
아무래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그 꾸러미를 풀기로 했다.
앞발로 휙휙 당겨봤는데 잘 안 풀렸다. 궁리하다가 꼬리를 보려면 뒤쪽을 봐야 하니까 난 그냥 꼬맹이를 굴려보기로 했다. 조그만 게 꽤 무거웠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꼬리, 꼬리… 어디 있는 거냐?

열심히 집중해서 꼬리 부위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이 꼬맹이가 앵-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다닥 들어오는 주인 여자와 이어지는 비명.
그리고 나서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따라 들어온 주인 남자가 나를 휙 내쳤고 나는 너무 당황해서 심지어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가! 이 우아한 내가! 엉덩방아를 찧다니!! 이건 굴욕이었다.

주인 부부는 빽빽 거리는 꼬맹이를 꼭 끌어안고는 얼굴이 벌게져서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순간 주인 남자는 엄청나게 화가 났는지 내 목덜미를 콱 움켜쥐고 현관문을 열더니
나를 밖으로 던져버리고는 문을 쾅 닫았다. 주인 여자는 말리지도 않았다. 아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쫓겨난 것이다.

쫓.겨.났.다.

내 자존심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잠시 현관문 밖에 얼어붙은 듯 있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분노.
저 꼬리도 없는 꼬맹이 때문에 감히 나를 쫓아냈다고? 내가 용서하나 봐라.
다시 들여보내 달라고 처량하게 문밖에서 운다거나 문을 긁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는 분이 채 식지 않았지만 휙, 돌아서서 거리로 나왔다.
거리로 나와 한참을 걷고 열이 좀 식고 나서야 비가 내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까만 발은 거리의 웅덩이에 철퍼덕 빠지고 있었고 내 멋진 꼬리와 윤기나는 털이 젖고 있었다.
이 세상에 암흑보다 더 캄캄한 게 있다면 고양이의 우울함일 것이다.
어디론가 가야 했다. 이렇게 비를 맞으며 복수를 꿈꿀 순 없다.

그때 큰길 너머 커다란 가게가 보였다. 아주 커다란 간판이 달린 큰 가게였다.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에서 본 간판이었다.
가게 안에 침실, 부엌, 거실 같은 여러 멋진 방이 잔뜩 있던 그 가게였다.
좋아. 난 저곳에 가서 살겠어. 여러 방을 뛰어다니며 진정한 샴 고양이의 우아함을 보여주겠어.
누군가의 무릎 위에 안겨있으려고 애쓰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잡히지도 않겠어.

나는 축축해진 털과 무거운 몸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우아하고 날렵한 걸음으로 가게로 향했다.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커다란 입구로 들어섰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건 그것대로 자존심이 꽤 상하는 일이었지만 지금 내 털들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그곳은 높은 천장과 환한 조명이 있었고 무엇보다 일단 따듯했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도도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데 맞은편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어느 꼬마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흥분해서 손짓하는 바람에 여전히 나의 매력이 살아있음을 다시 느끼고 기분이 좀 좋아졌다.

위층에 다다르니 과연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방문이 없고 벽이 절반만 있다는 게 좀 낯설기는 했지만 사실 그편이 뛰어다니기는 훨씬 좋았으니 불평할 건 없었다. 난 그곳에 모인 사람들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가장 맘에 드는 곳을 찾아다녔다. 푹신한 침대가 있는 침실 같은 방도 있었고 알록달록 꾸며진 이층침대가 있는 작은 방도 있었는데 난 바닥에 하얀색 러그가 깔리고 반짝이는 구슬이 달린 쿠션이 놓여있는 푸른 소파가 있는 거실 모양의 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소파의 팔걸이를 보고 있자니 햇살이 비추던 예전 그 집의 내 자리가 생각나 순간 울컥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고매한 고양이의 이성을 되찾았다.

좋아. 저곳으로 하겠어.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로는 안성맞춤이야.
그런데 이 시끄러운 사람들은 언제쯤 돌아가는 거야. 저렇게 계속 구경 다니면서 침대에 누워보고, 소파에 앉아보는 사람들이 꽤 거슬렸다. 이미 내 마음에는 저 소파가 내 것처럼 느껴져서 그랬는지 나는 조바심과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일단 올라가서 자리를 맡아둘까, 아니면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여기저기 나도 구경꾼 같은 마음으로 돌아다녀 볼까.

하지만 비를 맞다가 따듯한 곳에 들어와서인지, 있을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피곤함이 꼬리 끝에서부터 밀려와서 나는 그냥 그곳에 올라가서 앉아있기로 했다.
하얀색 러그를 가로질러 훌쩍 푸른 소파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팔걸이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팔걸이 자리는 예전 집에 있던 것보다 조금 좁고 낯선 냄새가 나긴 했지만 피로함 때문인지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깜박 잠이 든 것 같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꼬리를 휙 잡아당기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일곱 살 남짓한 아이들 서넛 나를 둘러싸고 내 꼬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까르르 거리면서. 이런 애들이 있다. 고양이라는 존재를 경외하고 존경해도 모자랄 판에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버릇없는 아이들이. 게다가 내 꼬리를 건드리다니. 나는 상황을 깨닫고는 등을 곧추세우고 온몸의 털을 바짝 세워 이빨을 드러내고 앞다리를 휘저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꺅하는 비명으로 바뀌었고 이어서 그 애들의 부모들이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가게 경비원을 불러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경비를 불러야 하는 건 오히려 내 쪽인데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들끼리는 자기들만의 모종의 유대가 있어서인지 어디선가 나타난 경비 둘이 나를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나는 늘 그렇듯 뛰어난 내 유연성과 민첩성을 발휘해 후다닥 소파에서 뛰어내려 하얀 러그를 가로질러 놀라서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달려갔다. 경비가 쫓아왔지만 나를 잡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어느 방이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람들을 헤치고 나를 잡는다는 건 너무 큰 꿈이었다.

난 어디로 숨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거의 한 층을 가로질러 달렸다. 그러다가 막다른 벽 근처에서 누군가가 나오며 열린 문틈으로 휘리릭 뛰어들어갔다. 그곳은 화장실이었다. 아주 커다란 화장실. 전에 살던 집에서 보던 것처럼 욕조가 있는 건 아니고 칸칸이 문이 달린  곳이었지만 커다란 거울이 있고 물이 나오는 세면대가 있는 거로 봐서는 분명 화장실이었다. 몇 개의 문은 열려있고 몇 개는 닫혀있었는데 나는 제일 끝쪽 칸 문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그 칸은 변기가 없고 뜯지 않은 새 휴지 뭉치와 걸레 같은 것들이 보관된 곳이었다. 여기라면 아무도 들어올 것 같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일단 휴지 뭉치 위로 올라가 숨을 골랐다.
기다려야 했다. 저 시끄러운 사람들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경비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리고 나면 나는 아까 그 푸른 소파 위로 올라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거다.
문득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배고프다고 앙앙거릴 때가 아니었다.
나는 새 휴지 뭉치 하나를 물어 뜯었다. 잘근잘근 씹으며 눈을 감았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닭고기라고 생각하며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나는 오늘 저녁 내게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들을 머릿속으로 다시 생각하며 다시금 허탈해졌다. 언제나 당당하고 눈부시던 내 꼬리마저 지금은 축 늘어져 있다.
하지만 오늘 밤을 잘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다. 나도 에너지를 다시 되찾을 수 있겠지. 분명 어디선가 맛있는 음식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이곳을 찾아온 것만으로도 내 능력을 충분히 보여준 거 아닌가. 나는 다시금 우아하고 고고한 샴으로서의 나의 존재에 대한 자신감을 느끼면서 잠을 청했다.

203 그리고 77

매주 금요일이면 임신 주 수가 갱신된다.
아침 아홉 시면 몇 주차가 되었다며 임신 관련 앱이 푸쉬 메시지를 보내주지만
사실 그 날 아침 눈을 뜨면서 이미 생각한다.
아 오늘로서 또 한 주가 시작되는구나.

몇 개의 앱을 깔아두고 있는데 한 앱은 그동안의 임신 기간을, 또 다른 하나는 남은 기간을 보여준다.
오늘로써 임신 203일, 그리고 앞으로 77일이 남았다고 한다.
시간이 정말 휙휙 지나가는 느낌이라서 매번 어리둥절하다.

예전엔 임신 기간 내내 길고 늘어지는 날들이 이어질 거라고 상상하며
온종일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밀린 문화생활을 다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이십 대 후반 한참 빠져있던 십자수 도안과 뭉치들을 넣어두면서
“나중에 결혼하고 임신하면 그때 이거 다 할 거야.” 라고 호기 좋게 뭘 모르고 선언하기도 하고 ^^

아 그런데 정말 시간 빠르다. 하루가 빠르다.
뭘 했는지 모르게 시간이 간다. 책도 못 펼쳐보는 날들도 있고
올겨울에 입혀보겠다는 조끼는 뒤판만 완료, 카디건과 덧신은 아직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우쿨렐레도 한 번 뚱땅거렸던가. 아니 심지어 이제는 슬슬 체크해야 할 ‘출산준비물’ 도 아직이다.
그런 모습이 한편으로는 진짜 ‘나 같다’ 싶어서 안심도 된다. ^^ 뭐지 이런 웃긴 상황은.

어제는 동네 보건소 산모교실에서 알게된 임산부 동생과 만나 점심을 먹었다.
9개월 차, 8개월 차 임산부 둘이 마주 보고 음식을 주문하는데 가져다주시는 식당 아주머니께서
몇 개월이냐 물으시며, 당신 딸은 7개월인데 우리 배보다 훨씬 크다신다. 셋 다 딸 배인데 다 다르다고.
그렇게 임산부(와 임산부를 둔 가족) 중심의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이게 또 새로운 동질감의 세상이구나 싶었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할 일이 없다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어서
우선순위를 못 정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게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일단은 조금씩 강제성이 있는 것부터 ^^ 그날그날 땅기는 걸 해나가야겠지.

번역 공부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과 매주 과제를 정해 글을 쓰고 있다.
오른쪽 카테고리의 ’642 stories’에 담는 글이다.
‘글쓰기 좋은 질문 642′에서 무작위로 뽑아서 쓰고 있는데 역시 혼자 할 때보다 진도가 빠르다.
(역시, 나란 인간. 강제성에 의존해야 뭐가 진행되는구나 싶어서 씁쓸하지만. 흑흑)

그래서 덩달아, 블로그에도 조금 더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개인적인 기록들을 남기고 싶어지니
이건 정말 다행인 일이다.

앞으로 77일. 물론 더 줄어들거나, 늦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오늘 이 순간. 203일을 보내고 77일을 남겨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다짐해본다.
인생이 다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짐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들도 분명 있겠지.

배 속의 아기가 꽉 쥔 주먹으로 보여준 것처럼, 화이팅! :)

 

Floating

예전에 영국에서 만난 어떤 분은 타국 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가장 기분 좋을 때는 다 쓴 샴푸 통을 버릴 때라고 했다. ‘부유’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던가.

바로 그 전의 대화가 아마  ‘가장 기분 좋을 때는 가끔 이곳이 익숙한 내 로컬처럼 느껴질 때다’, 라고 한 나의 대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표현한 ‘부유한다’는 느낌이 참 낯설었다.
내가 종종 나의 감정을 표현할 때 쓰는 ‘이질감’ 이란 것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종종 일상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나는 이제 제법 그런 감정에 익숙하지만
‘부유하는’ 감정은 또 어떤 것일까. 자유롭다는 가정을 깔고 있는 걸까.

그런데 가끔은 그 느낌을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잘 느낄 때가 있다.
요 며칠간은 흐린 날씨 탓인지, 비 탓인지 조금 더 그랬다.
부쩍 무거워진 몸 탓도 있을 것이고,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나 싶은 새삼스런 자각 탓도 있을 것이고, 계절이 바뀌어 가는 탓도 있었겠지.

내 살림을 살면서 느끼는 사소한 즐거움과 뿌듯함이 있다.
새 베갯잇을 씌울 때, 잘 마른 접시들을 찬장에 집에 넣을 때
차를 우리고 두 사람분의 아침을 준비할 때
그 작은 유쾌함을 종일 기억하려고 한다. 애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금세 피곤해지거나 가라앉지 않고, 부유하면서 아무 감정 없이 떠 있는 시간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종종 너무 많은 감정의 작은 소용돌이들이 내 안에서 생겨난다. 가끔은 그게 너무 커져 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지난 며칠이 좀 기진맥진했던 것 같다.

옷도 가벼워지고 (배는 무거워지지만 ;_;), 날씨도 가벼워진다.
이제 조금 더 가볍게 부유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