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
‘빨강’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빨간 물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생각해보라.
어둠과 얼음만이 존재하는 나라였다.
존재하는 색이라고는
하늘의 검푸른 색.
끝없이 펼쳐진 얼음벌판의 하얀 색.
시리게 하얗고 둥근 달의 노란색.
북쪽 숲 나무의 적갈색.
사람들의 눈동자에 담긴 검은 색.
한 번도 불지 않던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점점 거세어졌다.
북쪽 숲에서 나무들이 흔들렸다.
비쩍 마르고 커다란 나무들은 몸을 바람에 밀려 몸을 부딪쳤다.
바스락거리는 나무껍질들이 서로 맞닿았다.
바람은 계속 나무를 흔들었다.
맞닿아 흔들린 나무 사이에서 하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작고 노란 빛이 생겨났다.
처음으로 생긴 빛.
빛은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또 곁의 나무로 옮겨붙었다.
시시각각 달라지고, 점점 커졌다.
커다란 하나의 살아있는 빛의 덩어리가 숲을 집어삼켰다.
처음 보는 빛, 처음 보는 색이었다.
화려하고, 두려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쳐 오르는 듯한
심장 박동을 스무 배쯤 빠르게 만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모두 빨려들 것 같은
어지러움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모든 위험을 불사하고라도 삼키고 싶은
저 먼 이국의 베일 속 반짝이는 눈빛을 지닌 여인네 같은
그런 색이었다.
검푸른 하늘이 밝아지는 색
얼음 벌판이 녹아 없어지는 색
시리고 하얀 달을 사라지게 하는 색
북쪽 숲 나무를 삼켜버리는 색
사람들의 눈동자를 가득 채운 색
숲을 삼키고
벌판을 삼키고
하늘을 삼키고
달을 삼키고
사람들을 삼키고
커다란 하나의 붉은 색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