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엄마와 딸은 그 어떤 친구보다 가깝고, 때로는 연인 같은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엄마와 딸은 애증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나는 늘 그 관계가 어려웠다.
직장생활을 해야 했던 엄마와 애착 관계의 형성부터 부족했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취향과 기질,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너무나 닮은 부분 때문에 갈등을 겪는
어찌 보면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엄마와 딸’의 관계였을 수도 있다.
사실 깊이 들여다보고 풀어내자면 한없는 눈물과 청승이 나올지도 모르고
아직도 내가 해결해내지 못한 응어리를 토해낼지도 몰라서
언급을 하는 것조차 선뜻 움직여지지 않는 관계.
하여간 나와 엄마의 관계는 그랬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고, 엄마와 내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부터 각각 조금씩 독립을 하면서
많은 부분이 좋아졌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 애증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겠지.
하여간 그래서 내가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건 내가 결혼을 하고, 딸을 낳게 되는 거였다.
또 다른 ‘엄마와 딸’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
내가 잘 해오지 못했던, 내내 숙제 같던 그 관계를 내가 체득한 것만으로 겪어내야 하는 것.
오랫동안, 그건 내게 무서운 예언 같은 거였다.
십 대 때부터 나중에 결혼하고 행여 딸을 낳게 될까 봐 나는 전전긍긍했다.
농담처럼 “갖다 버릴 수도 없고, 어쩌지? 너무 무서운데.” 라며.
게다가 누구는 ‘맏딸 컴플렉스’ 라고 정의하던데
맏딸들은 한 번쯤은 꿈꾸어봤을 ‘오빠’라는 꿈의 존재.
나도 그런 게 있어서 ^^ 언제나 첫 아이는 아들이었으면 했다.
아니 어릴 적엔 아들만 삼 형제쯤 낳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그게 얼마나 순진한 -_- 이상이었던가를. 지금 생각하면…엄두도 안 난다.)
그렇게 내내, 나이를 먹으면서도, 언제 결혼을 할지 소원한 상태에서도 아들만 원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더 했다. 신랑하고 판박이인 아들을 낳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정말 신기하다.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았던 순간부터 너.무.나.도 딸을 원했다.
‘딸 엄마’인 내 모습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나였는데,
딸을 원하는 내 모습이 내 눈에조차 낯설어 어색할 정도로 내내 여자아이이길 바랐다.
그래서 “Never say ‘never’” 라고 하는 걸까.
인생은, 사람의 마음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마음도 내가 단정 지을 수 없다.
어느 순간에 바람이 방향을 바꿔 불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그리고 작게 희망을 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어려웠던 관계를 새로 다시, 잘해볼 기회를 얻고 싶다고.
내가 어렵고 힘들었던 부분을 잘 살펴보고 안아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매번 실패해서 더는 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허들을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알 수 없다. 잘할 수 있을지는.
하지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게 내 인생에서는 이미 첫 번째 허들을 넘은 거나 마찬가지다.
여전히 남자아이들의 뒤통수를 예뻐하고, 고등학생 정도가 되어도 여자애들보다 순진한 남자애들의 풋풋함을 좋아한다.
바지에 티셔츠 하나만 입혀놓아도 되는 편한, 예쁜 필통에도 무심하게 볼펜으로 끄적대는 남자애들의 무신경함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내내 들어서
나는 한동안 바뀐 내 마음을 보는 게 쑥스럽고 웃겼다. 신기하기도 하고.
점점 그 마음이 커져서 나중엔 거꾸로 마음을 다잡았다.
태어날 아이가 남자아이여도 괜찮아. 라고.
원래 남자아이들을 좋아했으니까 난 아들도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딸이네요.”
이제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앞을 본다.
이번엔 좀 더 잘 해보고 싶다.
최선을 다 해보고 싶다.
행여, 삶의 반전이 와서 아들이 태어난다고 해도 ^^
최선을 다하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