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 재채기
“엣취-!”
“힛- 칭..”
“우헤취!”
기침과는 또 다르게 사람마다 재채기 소리가 다르다.
갑자기 큰 소리로 터지듯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잣말하는 듯 조그맣게 숨죽이듯 하는 사람도 있고
보란 듯이 큰소리로 과장되게 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 ‘시월애’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사람이 숨기지 못하는 게 세 가지 있는데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이라고.
물론 때에 따라서는 코를 막고 참을 수 있는 재채기도 있지만 내게는 기침을 재채기로 바꿔도 같을 듯하다.
나는 굳이 유형을 따지자면 갑작스레 크게 하는 스타일인데 거기다가 한 번 시작되면 최소 세 번 이상씩 연달아 한다.
일부러 그러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몇 번을 하게 될지 나도 알 수 없어서 종종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런 재채기 덕분에 (?) 얻은 학창시절의 몇 가지 기억들이 있다.
대부분 학교마다 적어도 한 명씩은 존재하는 ‘미친 *’ 라는 체육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도 있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인상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우악스럽고 거친 인상의 남자 체육 선생님이었다.
인상처럼 수업이나 학생관리도 엄청나게 엄해서 등교 시 정문 앞에서 학생지도도 도맡아 했었는데
아침에 살 색 스타킹이 없어 다른 색 스타킹을 신고 등교했다가 걸려서 운동장을 한 바퀴 뛰게 했던 것도 그 선생님이었다.
중학교 때 어느 날인가 비가 오는 바람에 체육 수업을 실내에서 했을 때였다.
체육관이 없었기 때문에 뒷편 현관 근처 큰 실내 공간에서 모두 모여있었다.
두 줄씩 나란히 이 열 횡대로 체육 선생님 앞에 서서 뭔가 한참 반 전체가 꾸지람을 듣고 있었는데
뒤편 현관문에서 찬 바람이 불어와서 그랬는지 갑자기 나의 재채기가 시작되었다.
“엣취-”
처음 한 번을 했을 때는 선생님도, 아이들도 전혀 의식하지 않았었는데 몇 초간의 간격을 두고 재채기를 또 하기 시작했다.
“엣취-”
“그러니까 너희가 똑바로 서서…”
“엣취-”
주위 친구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전체가 꾸지람을 듣고 있던 터라 다들 조용했는데 그 와중에도 나의 재채기는 멈추지 않았고
다섯 번째쯤 재채기를 했을 때 갑자기 앞에 서 있던 그 무시무시한 선생님이 말하다 말고 못 참겠다는 듯 피식 웃는 거였다.
한순간 풀어진 분위기에 아이들도 와하하- 하고 웃어대고, 나는 고개 푹 숙이고 얼굴 빨개지고…
다시 선생님은 소리를 꽥 지르고 엄한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한바탕 쏟아진 소나기처럼 한 번 풀어진 분위기 덕에 모두 가벼워진 얼굴이었고
나는 처음으로 그 체육 선생님이 인간적으로 느껴졌던 걸 기억한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
조용하고 조금은 나른한 오후의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열심히 설명 중이셨고 예고 없이 나의 재채기는 또 시작되었다.
한 번. 몇 초의 간격을 두고 두 번, 세 번, 연신 재채기를 해대자 주위 친구들이 킥킥 대며 웃기 시작했다.
네 번. 다섯 번.
선생님은 하던 설명을 중단하고 이제 교탁에 서서 웃으며 나를 바라보신다.
여섯 번, 일곱 번.
반 친구들은 이미 큰소리로 깔깔대기 시작했고, 다행히 일곱 번쯤 하고 나의 재채기는 멈췄다.
그렇게 연달아 큰소리로 재채기를 하다가 멈췄는데 모두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아마 그때 내 심정을 상상할 수 있을 거다.
수업의 흐름은 끊어졌고, 선생님도 이 김에 쉬어가자 싶으셨는지 “너, 나와서 노래해”라며 씩 웃으셨다.
“네?? 에….”
나는 재채기 일곱 번을 연달아 하고, 얼결에 나가서 노래도 불렀다.
재채기 때문에 맹맹해진 콧소리로.
그렇게 학창시절에 가끔은 쉬어가는 쉼표를 만들었다고 자칭하는 나의 재채기가
대학생활을 지내고, 회사에 다니며 먼지 알러지가 원인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
기온이 갑자기 달라지거나 먼지가 많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심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와 비슷한, 하지만 나보다 조금 더 알러지가 심한 신랑이랑 산다.
둘이서 교보문고 같은 사람 많은 실내 공간에 가서 5분쯤 있으면 신랑이 재채기를 시작한다.
“엣취!-” (신랑도 나처럼 갑자기, 크게, 연달아 하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2, 3분쯤 있으면 나의 재채기도 시작된다.
“엣취!” “엣취-”
무슨 재채기 중창단도 아니고 누가 보면 볼 만 할 거다.
하지만 감출 수 없다고 하지 않나. 재채기와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