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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7

#307
당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의 하루

오늘도 어김없다.
출근 버스를 타고 나 혼자서 정한 내 지정석에 앉으면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그 남자가 탄다.
그 남자도 혼자 지정석을 정했는지, 아니면 나처럼 앞이 트인 전망을 원하는 것인지
매번 내 옆자리에 앉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눈인사를 나누거나 통성명을 하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마치 짝꿍인 듯 매일 나란히 앉아서 출근한다.

그 남자는 우연히도 나와 같은 회사, 같은 층, 맞은편 부서에서 근무한다.
내 자리가 우리 부서 끄트머리인 탓에 파티션 너머 고개를 조금 내밀면
그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보이고 만다.
뭐 우리가 사내 커플 같은 거였다면 엄청나게 좋아했을지도 모를 우연의 연속이지만
그 남자와 나는 일말의 인연도 없는 사이라 그런 우연들이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

같은 정류장에 내려 나는 늘 들르는 회사 건물 1층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올라온다.
사무실에 올라와 동료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본격적으로 앉아 숨을 고르면
맞은편 그 남자는 그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믹스커피를 타러 탕비실로 간다.
가끔은 나도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 같은 타이밍에 탕비실에 가서 인사라도 나눠볼까 생각하지만
뭐 그것도 별로 쓸데 없는 일인 데다가 무엇보다 나는 믹스커피가 질색이다.

보통의 회사원의 일이라는 게 하루하루가 그만한 일이어서 오늘의 일과도 큰 변화가 없다.
뭐 적어도 나에겐 그렇기에 오늘은 그 남자의 하루를 지켜보기로 했다.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자리에 온 남자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스크롤을 내린다.
화면을 바라보는 자세나 클릭하는 속도를 보니 뉴스 같은 걸 보는 건 아닌 것 같다.
대충 하얀 바탕에 리스트가 나오는 걸 보니 사내 이메일이나 게시판을 흩어보나 보다.
하긴 나도 출근하면 처음 체크하는 게 그러니 저 남자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다.

오전 업무시간은 후다닥 지나간다. 서류 몇 개 챙기고, 뽑아온 자료 살펴보고 정리하고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그 남자는 오전 내내 엑셀을 열어 표를 작성하고, 출력하고, 파일 함에서 문서를 가져와 보고 다시 표를 작성한다.
뭔가 딱히 손이 빠른 것 같지는 않고, 그래도 진득하게 화장실 한 번 안가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실해 보이긴 하지만 유능한지는 모르겠다. 뭐랄까 동료들과도 별 대화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사내식당이 없는 데다가 직장인들이 몰려있는 거리라 3분 차이로 20분씩 식당 줄을 서는 일이 빈번하여서
언제나 후다닥 동료들과 밥을 먹으러 나가곤 했는데 오늘은 입맛이 별로 없어 오전에 샌드위치를 사 왔다.
그래서 그냥 내 자리에서 서랍 속에 넣어둔 티백을 꺼내 우려 샌드위치와 대충 먹기로 했다.

맞은편 남자를 본다.
같은 부서 사람들이 우르르 식사하러 나가는데 가만히 앉아있다.
다른 동료들 표정을 보니 일상적인 일인듯하다.
그러더니 저 남자 가방에서 부스럭 거리며 뭔가 꺼낸다.
맙소사. 손수건에 싼 납작한 도시락통이 나온다. 도시락도 의외였지만 손수건에 싼 도시락통이라니.
난 의외의 광경에 놀라 씹던 샌드위치 조각을 꿀꺽 넘겼다.

그 남자는 도시락을 들고,  가방에서 작은 문고판 책을 꺼내 중앙 통로 옆에 있는 휴게실로 향한다.
매일 혼자서 책을 보며 싸온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는 남자라니.
이건 마치 고시생 같은 분위기잖아.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조금 시차를 두고 티백이 담긴 머그를 들고 탕비실을 향해 가며 천천히 휴게실 앞을 지나갔다.
휴게실엔 의자가 몇 개 있을 뿐 테이블이 없어서 가끔 도시락을 싸오는 여직원들도 휴게실이 아닌 다른 곳을 이용하는데 저 남자는 그곳에서 의자에 앉아 점심을 먹는 걸까?

그랬다. 그 남자는 무릎 위에 얌전히 도시락을 올려놓고 한 손으로는 책을 보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 단아하기까지 해서 당황스럽기보다 감탄스러웠다.
행여 눈을 돌려 유리문 밖의 나를 볼까 봐 서둘러 걸음을 옮겨 자리로 돌아와서는 저 독특한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도시락은 누가 싸주는 걸까? 아까의 단아한 모습으로 보면 본인이 직접 싸서 곱게 손수건으로 싸 온다고 해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러고 퇴근하면 혼자 도시락통을 설거지 하고 또 밤새 책이나 보는 걸까?
하여간 뭔가 상상할수록 흥미로운 모습이다.

직원들이 삼삼오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고 그 사람도 얌전히 자리에 돌아와 앉는 모습이 보였다.
가방에 도시락을 넣고, 읽고 있던 책도 얌전히 넣어두는 모습이 이제 조금 더 흥미롭달까.
마치 그 남자의 내밀한 비밀을 나만 본 것 같은 느낌에 조금 흥분되기까지 했다.
덕분에 오후 근무시간은 혼자서 추리와 상상을 반복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맘 같아선 오늘의 스파이 역할을 계속하면서 그 남자를 미행하고 싶은 말도 안 되는 욕심까지 생겼지만
오늘은 한 달 만에 출장에서 돌아온 애인과 간만의 저녁 약속이 있다.
어느새 내 맘은 그가 출장선물로 뭘 사 왔을지 궁금해하며 저녁을 예약한 식당까지 가는 시간을 계산하기 바빴다.

남자는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된 걸 확인하고 그날의 업무를 정리했다.
며칠째 끝나지 않는 엑셀 문서 작업. 지루하지만 그의 성향엔 딱 맞는다.
별다른 불평 거리도 없고, 그저 아침에 출근할 곳이 있고, 점심을 먹으며 책을 볼 시간만 있다면 사실 어떤 일을 해도 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그런 모습이 남들에게 지루하게 보일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동안 사귀어왔던 여자들도 모두 그런 그의 모습에 실망하거나 질색하고 헤어졌으니.
동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빈 도시락 덕에 출근 때보다 한결 가벼워진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그는 건물을 나가 지하철역을 향한다.

집과는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그는 번화한 강남의 어느 건물 뒤편으로 가 뒷문의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간다.
“왔어요?” 매니저가 늘 그렇듯 반갑게 그를 반긴다.
“밖에 상황 어때요?” 그가 활기차게 묻는다.
“내가 누누이 8시부터라고 이야기했는데도 7시부터 와서 기다리는 손님들 좀 봐. 못 말린다니까.”
매니저는 투정이지만 좋아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한다.

남자는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넥타이를 풀고, 슈트를 벗고 벽에 걸린 감각적인 셔츠로 갈아입는다.
거울을 보며 헤어젤로 머리카락을 정성 들여 세우고 가방에서 작은 휴대용 향수를 꺼내 뿌린다.
이제 그의 저녁 업무시간이다.
남과는 다른 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시간.
몇 주 전부터 예약한 손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강남 최고의 네일 아티스트. 아니 국내 최고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거다.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그의 손끝에서 이 동네 최고 미녀들의 손톱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아마 당신도 그의 손이 만들어낸 작품들을 본다면 당장 예약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고 장담한다.

가게 안쪽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고 미리 와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의 눈이 기대감과 흥분으로 반짝인다.
이 남자의 하루가 이제 빛나기 시작한다.  

#210

#210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이라는 주제를 보고 생각난 건 어릴 적 사진이다.

사진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지나간 시간의 순간을 기록한 것이고
사진으로 남겨지고, 보관된 지나간 시간이라는 것은 그리움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비록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 사진은 몇 개월 때의 모습인지 모르겠다.
돌사진엔 무언가를 붙잡고 서 있었으니 아마 그보다는 조금 더 지나서였겠지.
나는 11월생이니 아마도 그다음 해 여름쯤 되었으려나.

4등신의 키에 불뚝 나온 D라인의 배와 타이어 광고 마스코트 같은 토실토실한 팔뚝.
게다가 동그란 바가지 머리에 무념무상의 표정이라니.
엄마는 손으로 채 뭔가를 잘 잡지 못하는 아기인 날 위해 풍선을 손목에 매달아주었다.
그리고 저긴 아마 동네 어딘가의 골목길, 누군가의 집 앞이었을 것이다.

저 날의 사진이 몇 장 있다. 전부 골목길에서 찍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거나, 계단참에 앉아서 짧은 다리를 달랑 달랑 흔들거나.
매 사진마다 빨간 풍선이 마치 호위무사처럼 내 곁에 두둥실 떠 있다.

내가 이 사진을 아끼는 건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나’지만 지금의 내가 모르는 ‘나’.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꿈꾸었을지 모를,
그 어떤 사회적 교육이나 제도에도 길들지 않았던 시절의,
겨우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당당하게 우뚝 두 발로 서서 있는 ‘나’
그 ‘나’의 모습이어서 뭔가 뭉클하기 때문이다.

종종 상상할 때가 있다.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하고 대화하는 상상.
그림을 망쳤다고 울고 있는 1학년 꼬마 나에게는 괜찮다고, 충분히 멋진 그림이라고 말해주고
무거운 책가방에 한숨 쉬던 중학생 나에게는, 다 순조롭게 흘러가서 멋진 추억이 될 거라고 말해주고
나쁜 남자랑 연애하며 울던 20대의 나에게는 나중에 정말 좋은 사람과 만나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꼭 끌어안아 주는 상상.

그런데 이 사진 속의 꼬맹이에겐 그 어떤 위로도, 격려도 필요 없을 것만 같다.
그냥 뒤뚱뒤뚱 용감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지금의 내가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저 사진속의 나에게 배경음악으로 불러주고 싶다. :)

#143

#143

내가 알고 있는 내 모습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 모습.

penguin_

 

콩이는 형과 누나가 셋이나 있었다.
엄마와 아빠, 큰 형, 큰 누나, 작은 형 그리고 콩이.
이렇게 여섯 식구는 황제펭귄 가족이었다.

콩이의 아빠는 키도 훤칠했고 가슴에 털도 멋지게 나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펭귄 무리에서 가장 멋진 목소리로 노래했다.
큰 형은 듬직한 어깻죽지를 가졌고 수영에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큰 누나는 누구보다 우아하게 얼음 위를 걸어 다니고 절벽에선 멋지게 슬라이드를 했다.
작은 형은 바다로 다이빙해 반짝이는 까만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채는 사냥의 일인자였다.
콩이는 그냥 막내 콩이었다.
솜털만 보송보송할 뿐 아직 멋진 가슴 털도 없고
조그맣고 동그란 어깨에 ‘끼익 끼익’ 거리는 작은 목소리를 가졌다.
게다가 아직도 종종 얼음판 위에서 걷다가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깊이 수영해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건 엄두도 못 냈다.

“나는 언제쯤 우리 식구들처럼 멋진 황제펭귄이 될 수 있을까. 왜 나만 이렇게 작고 솜털 투성인걸까?”
콩이는 늘 멋진 가족들을 보면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속상했다.

오늘은 펭귄 유치원에서 자기 모습을 그려 오는 숙제를 내줬다.
콩이는 커다란 종이 위에 자기 모습을 쓱 그렸다가 망설였다.

“너무 크게 그렸나 봐. 나는 아빠만큼 키가 크지도 않은데.”
콩이는 처음 그렸던 모습을 지우고 절반만 하게 다시 그렸다.
파닥파닥 날갯짓하는 모습을 그렸다가 또 망설였다.
“난 큰 형처럼 단단한 어깻죽지도 없는데….”
콩이는 네모나고 커다랗게 그린 어깨를 지우고 조그맣고 동그란 어깨를 다시 그렸다.
멋지게 얼음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건 작은 형 같아 보여서 콩이는 다시 망설였다.
대신 멋지게 얼음 절벽을 슬라이드 해서 내려오는 신나는 모습을 그릴까?
콩이는 생각했지만, 그건 큰 누나의 모습 같아서 그냥 얼음판에 서 있는 자기를 그리기로 했다.
대신 커다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콩이는 또 망설였다.
“난 작은 형처럼 멋지게 물고기 사냥을 할 수도 없는걸…”
콩이는 큰 물고기를 지우고 자기 손바닥만 한 작은 물고기를 그렸다.

콩이는 그냥 심심한 얼음 벌판 위에 조그마한 펭귄이 작은 부리로 더 조그만 물고기를 입에 물고
동그란 어깻죽지에 이어진 작은 팔을 펼치고 가만히 서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래. 이게 내 모습인걸.”
콩이는 자기 모습이 싫진 않았지만 조금 아쉽고 속상했다.

그림을 그려놓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콩이에게 엄마가 다가왔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언제나 콩이를 이해하는 엄마는 콩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콩이는 아직 자라는 중이란다. 조금만 지나면 아빠나 엄마, 형들이나 누나만큼 멋진 황제펭귄이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아마 알게 될 거야.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엄마의 아들인지”
콩이는 엄마 품에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엄마 말처럼 정말 자기도 멋진 황제펭귄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추운 바람이 불던 몇 달 후 남극 펭귄 마을에 새로운 손님들이 나타났다.
커다란 물건을 가득 싣고 와서 천막을 쳐 놓고 엄마 아빠보다 큰 키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펭귄들은 호기심에 우르르 몰려가 구경을 했고 콩이와 친구들도 같이 따라갔다.
그 사람들은 펭귄 식구들을 좋아했다. 매일매일 커다랗고 까만 네모난 상자를 들고 펭귄 식구들을 몇 시간이고 따라다니기도 했고 가끔 콩이와 친구들이 옆에 가서 기웃거리면 큰소리로 유쾌하게 웃기도 했다.

하루는 콩이가 혼자 다가가 기웃거리며 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커다란 상자에서 반짝이는 판을 꺼내 콩이 앞에 펼쳐 세웠다.
펼쳐진 판을 본 콩이는 깜짝 놀랐다. 그 속에는 처음 보는 멋진 황제펭귄이 콩이와 마주 서 있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누구인지 궁금해 다가가니 그 펭귄도 콩이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안녕하세요?” 하며 콩이가 오른팔을 들었더니 맞은편 펭귄도 입을 벌리며 똑같이 한쪽 팔을 들었다.

콩이는 문득 멈춰 서서 가만히 왼쪽으로 한 걸음 걸었다.
맞은 편 펭귄도 콩이와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한 걸음 걸었다.
콩이가 두 팔을 활짝 올렸더니 맞은 편 펭귄도 똑같이 활짝 팔을 올렸다.

거울을 처음 본 콩이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평소에 바닷물에 콩이가 얼굴을 비춰보는 것처럼,
뭔가 이것도 반대편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럼, 맞은편에 콩이가 하는 대로 똑같이 움직이고 있는 저 펭귄은 바로 콩이인걸까?

콩이가 잔잔한 바닷물에 가끔 얼굴을 비춰볼 때는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봐야 했기 때문에
얼굴이 커다랗게, 그리고 가슴이 살짝 보이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똑바로 서서 마주 보는 콩이의 모습은 그동안 콩이가 알던 자신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콩이는 다시 거울 속 맞은편 펭귄을 천천히 살펴봤다.

콩이는 어느새 아빠처럼 키가 훌쩍 커 있었고
어깨와 양팔은 큰 형처럼 튼튼하고 길쭉했다.
콩이의 부리는 작은 형처럼 까맣게 반짝였고 얼음 위를 걷는 모습은 큰 누나만큼 우아했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터인가 얼음판 위에서 넘어지는 일도 없었다.
얼마 전에는 펭귄 학교 선생님이 콩이에게 엄마처럼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한 적도 있었다.

가만히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변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콩이 곁으로 엄마와 아빠, 형들과 누나가 다가왔다.
맞은편에 보이는 6식구의 모습은 완벽하고 당당한 황제펭귄 가족의 모습이었다.
모두 윤기나는 검은 털과 반짝이는 부리, 그리고 당당한 가슴을 내밀고 함께 서 있었다.

콩이의 마음속에 살던 보송보송한 솜털의 새끼 펭귄이 거울 속 늠름한 콩이에게 속삭였다.
“넌 정말 멋진 황제펭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