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내가 알고 있는 내 모습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 모습.

콩이는 형과 누나가 셋이나 있었다.
엄마와 아빠, 큰 형, 큰 누나, 작은 형 그리고 콩이.
이렇게 여섯 식구는 황제펭귄 가족이었다.
콩이의 아빠는 키도 훤칠했고 가슴에 털도 멋지게 나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펭귄 무리에서 가장 멋진 목소리로 노래했다.
큰 형은 듬직한 어깻죽지를 가졌고 수영에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큰 누나는 누구보다 우아하게 얼음 위를 걸어 다니고 절벽에선 멋지게 슬라이드를 했다.
작은 형은 바다로 다이빙해 반짝이는 까만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채는 사냥의 일인자였다.
콩이는 그냥 막내 콩이었다.
솜털만 보송보송할 뿐 아직 멋진 가슴 털도 없고
조그맣고 동그란 어깨에 ‘끼익 끼익’ 거리는 작은 목소리를 가졌다.
게다가 아직도 종종 얼음판 위에서 걷다가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깊이 수영해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건 엄두도 못 냈다.
“나는 언제쯤 우리 식구들처럼 멋진 황제펭귄이 될 수 있을까. 왜 나만 이렇게 작고 솜털 투성인걸까?”
콩이는 늘 멋진 가족들을 보면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속상했다.
오늘은 펭귄 유치원에서 자기 모습을 그려 오는 숙제를 내줬다.
콩이는 커다란 종이 위에 자기 모습을 쓱 그렸다가 망설였다.
“너무 크게 그렸나 봐. 나는 아빠만큼 키가 크지도 않은데.”
콩이는 처음 그렸던 모습을 지우고 절반만 하게 다시 그렸다.
파닥파닥 날갯짓하는 모습을 그렸다가 또 망설였다.
“난 큰 형처럼 단단한 어깻죽지도 없는데….”
콩이는 네모나고 커다랗게 그린 어깨를 지우고 조그맣고 동그란 어깨를 다시 그렸다.
멋지게 얼음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건 작은 형 같아 보여서 콩이는 다시 망설였다.
대신 멋지게 얼음 절벽을 슬라이드 해서 내려오는 신나는 모습을 그릴까?
콩이는 생각했지만, 그건 큰 누나의 모습 같아서 그냥 얼음판에 서 있는 자기를 그리기로 했다.
대신 커다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콩이는 또 망설였다.
“난 작은 형처럼 멋지게 물고기 사냥을 할 수도 없는걸…”
콩이는 큰 물고기를 지우고 자기 손바닥만 한 작은 물고기를 그렸다.
콩이는 그냥 심심한 얼음 벌판 위에 조그마한 펭귄이 작은 부리로 더 조그만 물고기를 입에 물고
동그란 어깻죽지에 이어진 작은 팔을 펼치고 가만히 서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래. 이게 내 모습인걸.”
콩이는 자기 모습이 싫진 않았지만 조금 아쉽고 속상했다.
그림을 그려놓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콩이에게 엄마가 다가왔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언제나 콩이를 이해하는 엄마는 콩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콩이는 아직 자라는 중이란다. 조금만 지나면 아빠나 엄마, 형들이나 누나만큼 멋진 황제펭귄이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아마 알게 될 거야.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엄마의 아들인지”
콩이는 엄마 품에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엄마 말처럼 정말 자기도 멋진 황제펭귄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추운 바람이 불던 몇 달 후 남극 펭귄 마을에 새로운 손님들이 나타났다.
커다란 물건을 가득 싣고 와서 천막을 쳐 놓고 엄마 아빠보다 큰 키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펭귄들은 호기심에 우르르 몰려가 구경을 했고 콩이와 친구들도 같이 따라갔다.
그 사람들은 펭귄 식구들을 좋아했다. 매일매일 커다랗고 까만 네모난 상자를 들고 펭귄 식구들을 몇 시간이고 따라다니기도 했고 가끔 콩이와 친구들이 옆에 가서 기웃거리면 큰소리로 유쾌하게 웃기도 했다.
하루는 콩이가 혼자 다가가 기웃거리며 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커다란 상자에서 반짝이는 판을 꺼내 콩이 앞에 펼쳐 세웠다.
펼쳐진 판을 본 콩이는 깜짝 놀랐다. 그 속에는 처음 보는 멋진 황제펭귄이 콩이와 마주 서 있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누구인지 궁금해 다가가니 그 펭귄도 콩이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안녕하세요?” 하며 콩이가 오른팔을 들었더니 맞은편 펭귄도 입을 벌리며 똑같이 한쪽 팔을 들었다.
콩이는 문득 멈춰 서서 가만히 왼쪽으로 한 걸음 걸었다.
맞은 편 펭귄도 콩이와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한 걸음 걸었다.
콩이가 두 팔을 활짝 올렸더니 맞은 편 펭귄도 똑같이 활짝 팔을 올렸다.
거울을 처음 본 콩이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평소에 바닷물에 콩이가 얼굴을 비춰보는 것처럼,
뭔가 이것도 반대편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럼, 맞은편에 콩이가 하는 대로 똑같이 움직이고 있는 저 펭귄은 바로 콩이인걸까?
콩이가 잔잔한 바닷물에 가끔 얼굴을 비춰볼 때는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봐야 했기 때문에
얼굴이 커다랗게, 그리고 가슴이 살짝 보이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똑바로 서서 마주 보는 콩이의 모습은 그동안 콩이가 알던 자신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콩이는 다시 거울 속 맞은편 펭귄을 천천히 살펴봤다.
콩이는 어느새 아빠처럼 키가 훌쩍 커 있었고
어깨와 양팔은 큰 형처럼 튼튼하고 길쭉했다.
콩이의 부리는 작은 형처럼 까맣게 반짝였고 얼음 위를 걷는 모습은 큰 누나만큼 우아했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터인가 얼음판 위에서 넘어지는 일도 없었다.
얼마 전에는 펭귄 학교 선생님이 콩이에게 엄마처럼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한 적도 있었다.
가만히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변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콩이 곁으로 엄마와 아빠, 형들과 누나가 다가왔다.
맞은편에 보이는 6식구의 모습은 완벽하고 당당한 황제펭귄 가족의 모습이었다.
모두 윤기나는 검은 털과 반짝이는 부리, 그리고 당당한 가슴을 내밀고 함께 서 있었다.
콩이의 마음속에 살던 보송보송한 솜털의 새끼 펭귄이 거울 속 늠름한 콩이에게 속삭였다.
“넌 정말 멋진 황제펭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