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멀어져간다.

서른네살이었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내겐 ‘서른 다섯’ 이란 나이가 내 앞으로 굴러오는 커다란 바위처럼 느껴졌었다.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낳지 않은 채 서른 다섯을 맞이하다니! 뭐 그런 느낌이었다.
계절이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면서 머릿속의 ‘서른다섯’이란 숫자에 어찌나 조바심을 내면서 지냈던지 당시 처음 만난 이가 나이를 물어봤는데 “저 서른 다섯이요.” 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그게 벌써 십년전인데 요즘 내 심정이 딱 그때 같다.
마흔다섯이 다가오고 있다. 마흔다섯이라니!
마흔넷이 된 것도 낯설었는데 어느새 100일도 안 남은채로 올해가 가고 있다.

2년째 정리 안된 이삿짐과, 작년에 이어 완성하지 못한 꼬마의 망또와, 몇해 전 PT에 돈을 쏟아부으며 도달하고자 했던 몸과는 점점 더 거리를 벌려가며 마흔 다섯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사실 나름대로 나의 ‘마흔다섯’에 대한 각성은 올해가 시작되었을 때 이미 시작되었고 마음의 준비도 했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계획들도 있었고.
그런데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10월의 중순. 마지막 분기도 이미 1/6은 지나갔다.

오늘은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어제의 유쾌하지 못한 기분이 밤새 꿈으로 재연되었고 화창한 오늘 날씨와는 다르게 맘이 내내 쓸쓸하다.
이대로 마흔 다섯이 되는건가 생각하니 누구라도 만나서 수다를 좀 떨고 싶었는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당장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게 어른의 방식일텐데
그걸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러워지지 않는걸 보니 아직 마음의 평화도, 불혹도 머나먼 곳에 있나보다.

남은 기간동안 하루 두끼(…)를 시도해볼까. 너무 꾀부리는 것 같은 기분이네.
적어도 마음이라도 내가 원하는 내 모습에 가깝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아이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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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빨랐다고 한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엄마, 아빠 하다가
어느날 마당에 핀 꽃을 보고 “아이 꽃 폈다!” 라고 해서
여느 부모들이 한번쯤은 다 그렇듯 ^^ 천재가 아닌가 생각하셨다고 한다.

임신 기간내내 나는 번역 수업을 듣고 있었다.
매주 뱃속에서 아기가 커가는동안 매주 주어진 원서를 읽고 번역숙제를 했다.
아 그러고보니 그때 재택근무로 어느 회사의 영업과 제품에 대한 기술번역일도 하고 있었다.
(출근을 안하던 생활이어서 기억이 희미했다. 아 그렇다고 매일 일을 안한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궁금하기는 했었다.
내 아이는 언어에 소질이 있을까? 책을 좋아할까?
커서 외국어에는 흥미가 있을까? 영어는 좋아하게 될까?

아이는 지금 세살.
내일 모레면 26개월에 들어선다.

어린이집도 아직 안 보내고 손윗 형제가 있는게 아니어서 다른 외부환경의 친구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현재 아이 또래에서 만나거나, 노는 친구들에 비하면 딸아이는 확실히 말이 빠르다.
처음 보는 아기엄마들도 첫 마디가 아이가 키가 크네요, 말 엄청 잘하네요, 다.
(아아. 고슴도치 엄마 아니고 ^^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은 ‘팩트’다)

아직 숫자는 “하나, 둘, 셋, 다섯, 일곱, 열!” 로 세지만 ^^
어휘는 제법 많이 아는 편이어서 가끔 깜짝 깜짝 놀라기도 했고
안전벨트, 청진기, 머리카락, 구급차 등의 발음이 어려운, 어려울 것같은 단어들도 정확하게 발음한다.

그러던 아이는 조금씩 주어, 서술어를 구분해서 문장을 만들더니 요즘은 접속사를 사용한다.
그런데, 하지만, 고담에(그다음에) ,~할지도 모르고 등의 단어를 쓰는데
한번쯤 내가 말해준 문장에서 본인이 인상깊게 생각하고 기억해두었다가 사용한다
지난주말엔 밤에 아이를 재우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까 어떤 친구가 갑자기 울었지?” 했더니
그 다음날부터 ‘갑자기’를 넣어서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다.”꼬끼가(토끼가) 갑자기 나타나서 울었어.” 같은.
아직 조사가 완벽하지 않아서 기침하는 나를 보고 “엄마 목이가 아파?” 라고 한다던가
일단 처음 입력된 발음으로 익혀서 ‘비누방울’은 여전히 ‘비바푸풀” 하고 말하는 허당(?)인 면도 물론 있다.

미디어를 최대한 적게 보여주는 것이 우리 부부의 방침이라 아이는 주중에 한번도 티비나 아이패드를 안 본적도 있을 정도인데
그래도 가끔은 위급상황이거나 (식당에서 놀러온 손님과 밥을 먹거나) 아이가 보고싶다고 강력하게 요청할때는 보여주기도 한다.
그때 주로 아이가 보는 가장 좋아하는 만화 ‘페파피그’에서도 말을 많이 배운다.
페파가 주로 쓰는 표현이 있는데 예를 들면 “엄마 지금 뭐하세요?” – 아이가 하루에 열번은 물어본다. (페파의 어조로…)
“엄마 우리 지금 어디가는거에요?”
“엄마 죄송해요.” “네 엄마”
써놓고 보니 대부분 존댓말이다. 안그래도 우리는 부부도 서로 존댓말을 하고 아이에게도 주로 존댓말을 하는데
페파피그를 보면서 아이는 뭐라고 해야 할까. 존댓말이 자리를 잡았다고 표현해야 할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거 저기 버려주세요.” 하고 심부름 시키면 모범생처럼 “네. 엄마” 하고 들고가는 모습이 엄마아빠 눈에는 또 얼마나 웃긴지.

요즘은 문장의’나열’에 빠져있는데 말을 하다가 ‘고담에~(그다음에)’가 나오면 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오리, 고담에 아기 캥거루, 고담에 페파, 고담에~” 이런 식이다.

그러더니 오늘 저녁엔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 – 내가 며칠 해주다가 아이에게 거꾸로 해달라고 한다-.
“어어 딸기물고기가 (딸기색= 빨간색.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바다에 살았어. 근데 어느날 갑자기 삐죽 물고기를 만났어. 고담에 조개를 만났어~”
오늘의 아이의 새로운 단어는 ‘어느날 (아이 발음은 ‘오느날”) 이었다.
처음 쓰는 단어라 깜짝 놀라기도 했고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정말 풀타임 밀착육아인데도 아이는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배우고, 보고, 기억하고, 습득하고 있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언어 뿐 아니라 행동이나 표정, 안정감이나 불안감의 감정들도 배우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다시금 육아가 내 거울이구나 싶다.

아이 나이만큼 엄마나이 (플러스 뱃속의 시간) 일테니 이제 나도 겨우 26개월 엄마니 성장할 수 있겠지? :)
그래도 엄마는 좀 더 부지런히 나아져야겠다.

참, 아이가 말은 제법해도 아직 구강구조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꼬마라 발음은 아기다워서 그게 참 귀엽다.
특히 ‘리을’ 발음은 이 시가가 조금 더 오래갔으면 하고 바랄정도다.
“엄마. 버스가 부융부융 지나가요.” “이 빵은 마양마양해 .” “저기 뽀요요가 있네?”
너무 빨리 크지 않았으면 :) 하는 엄마의 마음이 오늘도 절반.

제주는 너무 습하고 더워서 날마다 아이와 어디로든 피서를 간다.
아마 내일도 아이는 내가 매일 아이에게 물어봤던 말을 내게 물어볼거다.

“엄마, 우리 어디 시원한데 가까?”

아직.

아직- 이라고 말을 시작하고보니 한국어는 참 오묘하구나 싶다.
아직은, 아직도, 의 느낌이 다르다.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건 ‘짐 줄이기’ 다.
사실 본격적인 건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한 생명분의 짐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걸 경험하면서였다.
‘콩알만한’ 식구가 하나 생겼는데 짐은 ‘어마어마’하게 새로 생겨났다.
옷가지와 기저귀 젖병부터 욕조, 침대, 유모차, 그리고 장난감들.
고맙게도 아기용품의 많은 것들을 여기 저기서 운 좋게 물려받았는데 그래서인지 한꺼번에 잔뜩 생겨버린 짐이 집 구석에 쌓여있곤 했다.
그렇게 이사를 결심하고, 우연찮게 제주로 내려와 신혼집보다 훨씬 큰 집에서 지내며 갓난아기적 짐들은 많이 처분했지만
책과 책장 등의 또 다른 짐들이 또 생겨났다.

사실 아기 짐은 둘러대기 좋은 핑계고 이 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내 짐이다.
오랜 기억속의 물건들은 그동안 베이스캠프격인 친정에 맡겨두었지만 작년 친정집 이사시기에 퇴출명령을 받아서 제주로 모두 끌고 왔다.
(사실 엄마 모르게 두 박스 정도는 숨겨두고 왔다)
그리고 제주로 가져온 그 박스들은 올때 모습 그대로 방 한 구석에 쌓여있다.
볼때마다 가슴이 무거워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뭐가 들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사실 잘 알고 있다. 저 짐들 중 아마도 70프로 이상은 버려도 무방한것이라는 걸.
‘나중에 필요할 때’ 라는 건 짐 못 버리는 사람의 닳고 닳은 지루한 핑계라는 것도.
좋았던 시절의 추억의 물건들도 다시 꺼내볼 일은 앞으로도 거의 없을거라는 것도.
결국 ‘감정’ 때문에 쌓아두고 있는 짐이라는 것도.

나도 종종 이런 내가 싫지만 나는 ‘아직’ 변하지 못했다.
‘아직도’ 미련한 감정이 남아서 과감하게 버리지 못한다.
그러니까 버리지 못하는 건 짐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아는데 여전히 잘 못 한다.

쌓여있는 건 물건이 아니라 감정이구나. 하는 생각을 매 번 한다.
아쉬움, 미련, 안타까움같은.
나만 알아주는 내 그 감정들을 ‘아직은’ 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좀 보내야지.
‘아직’ 대신 ‘드디어’가 되어야지.